세계 각국이 인구 고령화에 따른 수혈 수요 증가, 저출산에 의한 헌혈인구 감소 등으로 발생하는 혈액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공혈액 개발에 본격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오는 2035년을 전후해 인공혈액 시대가 개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전 세계에서 2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적시에 충분한 혈액을 수혈했다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국가에서 헌혈인구가 크게 감소하면서 혈액 부족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 혈액 보유량이 정상(5일분)을 밑도는 3일분 이하로 낮아져 비상이 걸린 바 있다.

앞으로도 혈액 수급불균형은 심화될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 기조로 주력 헌혈층인 10~30대가 줄고 있는 탓이다. 의학계는 이 난제의 근본적 해법으로 ‘인공혈액’을 꼽고 있다.

◇외상학계의 성배=인간의 혈액은 액체성분인 혈장과 고체세포인 혈구(적혈구·백혈구·혈소판)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몸 전체에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도록 완벽히 설계돼 있다. 또한 면역·지혈·대사조절 등에도 관여한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세기 동안 전쟁이나 사고로 인한 출혈성 외상으로부터 더 많은 인명을 구하기 위해 이런 혈액을 대체할 인공물질을 찾아왔다. 첫 시도는 1600년대초 시작됐다. 의학지식이 짧았던 당시에는 혈관에 동물의 피와 젖(우유), 심지어 맥주·와인을 주입하기도 했다. 이후 1900년대에 혈액형의 존재를 알고 난 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지금의 수혈 기술이 정립됐고 1980년대 들어 현대적 의미의 인공혈액 연구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눈부신 의학발전에도 불구하고 모든 도전은 실패로 귀결됐으며 인공혈액은 여전히 꿈의 성배로 남아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관계자는 "혈액의 기능이 워낙 다양하고 미묘해 이를 모두 모사할 수 있는 물질의 개발은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는 것만큼 난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적혈구를 모사하라=이에 과학자들은 혈액 자체가 아닌 혈액의 특정 성분을 대체하는 물질의 개발로 연구의 방향을 전환한 상태다. 최우선 타깃은 적혈구다. 골수에서 생성되는 적혈구는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이용해 산소를 운반하는데 과다출혈로 사람이 사망에 이르는 것도 적혈구의 부족에 따른 체내 산소공급 저하가 핵심요인이다. 적혈구 대체물질만 있어도 위급상황에 처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미국 바이오기업 HbO2 테라퓨틱스 등이 내놓은 합성 헤모글로빈인 ‘헤모글로빈 기반 혈액 대체제(HBOCs)’다. HBOCs는 단백질이라 세포인 적혈구보다 관리와 보관에서 월등한 우위를 지닌다. 실제 인간 혈액의 유통기한은 최대 6주지만 HBOCs는 1~3년에 이른다. 또 HBOCs는 혈액형을 규정하는 ABO 항원 관련 단백질이나 당이 없어 모든 환자에게 수혈할 수 있다. 멸균처리도 가능해 감염에서도 안전하다.

다만 HBOCs가 상용화되려면 큰 산 하나를 넘어야 한다. 심장발작 등 심각한 부작용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생명공학기업이 부작용 최소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답이다=HBOCs에 더해 최근에는 생명공학계의 도깨비 방망이로 불리는 줄기세포를 활용하는 연구가 새롭게 뜨고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200여개 세포로 모두 변화할 수 있는 역분화줄기세포(iPSCs)를 분화시켜 적혈구를 얻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줄기세포에 기반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줄 수 있는 네거티브 O형(RH-O형)을 생산할 수 있다. 특히 HBOCs와 같은 부작용이 없고 면역거부 반응에서도 자유롭다. 현 기술로는 수혈용 혈액 한팩 분량인 400㎖ 제작에 수억원이 든다는 게 한계지만 상용화 가능성에서 HBOCs를 앞선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2035년을 전후한 실용화를 예상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도 혈액난을 해결하고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블루오션인 줄기세포 기반 인공혈액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난달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 복지부·산업부·식약처 등이 참여하는 다부처 기획사업으로 ‘줄기세포 기반 인공혈액 제조 및 실증 플랫폼 기술개발’ 프로젝트가 포함된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58억원을 포함해 2027년까지 총 471억원을 투입해 인공혈액(적혈구·혈소판) 생산기술을 확보하고 제조공정 플랫폼 구축, 안정성·유효성 평가, 임상연구 진입을 위한 지원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한 시민이 헌혈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혈인구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2015년 30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60만명으로 6년만에 15.5%나 줄어들었다. /연합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한 시민이 헌혈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혈인구는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2015년 30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260만명으로 6년만에 15.5%나 줄어들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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