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츠머스 조약' 117주년...되돌아본 그날의 역사

러일전쟁 종식과 전후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의 주인공들. 주선자인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러시아제국과 일본제국 대표들이 실려 있다.
 

117년 전 5일, 러·일 강화조약이 맺어졌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의 종식과 전후 처리를 위한 것이었다. 회담장소가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州의 군항 도시 포츠머스(Portsmouth)여서 ‘포츠머스 조약’으로도 불린다.

세계 패권을 둘러싼 서구와 러시아의 경쟁 속에 발발했으나, 전쟁터는 한반도와 만주 일부 지역이었다. 조선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전쟁이었는데, 당시 조선은 ‘서양 오랑캐에 맞섰다’며 일본을 응원했다.

1905년 8월 10일 개시한 회담이 9월 5일 강화조약 조인에 도달한다.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다. 회담을 주선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1858~1919) 미 대통령은 이 공로로 현직 대통령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됐다(1906년). 러일강화조약의 요점은 일본의 승리와 조선의 식민지화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패했다면 조선은 러시아에 할양될 운명이었다. 이후 러시아혁명을 거쳐 등장한 소련이 2차대전 전승국이었으므로, 조선의 독립은 영원이 불가능했으리란 점에서 특히 주목할 한국사의 한 대목이다.

일본은 1905년 3월 펑톈(奉天, 현 선양 瀋陽) 지역의 대규모 지상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5월말 츠시마(對馬) 및 동해에서 러시아함대를 격파한다. 그러나 1년 국가예산 약 4배의 전비를 쓴 마당에 일본 역시 전쟁을 지속하긴 어려웠다. 6월, ‘조선에 대한 자유행동권, 요동반도 조차권 양도, 배상’ 등의 조건으로 미국에게 ‘중립적 우의적 중재’를 요청했다. 일본 개항 이래 미·일 우호관계가 최고조였으며, 북미대륙 내 영토 확장 과정에서 서구 열강과 겨루던 미국은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하던 참이었다.

"일본제국이 미국을 대신해 러시아와 싸운다"고 루즈벨트 대통령이 공언할 만큼, 개전 때부터 미국은 일본 편이었다. 미국 유대인협회 회장이자 은행가 제이콥 쉬프와 철도왕 에드워드 해리먼 역시 일본국채를 사주는 등 적극 지원했다. 추후 조선·만주·몽골·시베리아·연해주 이권을 위한 발판이었다. 전세를 역전시켜 주리라 믿던 발틱함대가 동해에서 전멸당하자, 협상을 거부하던 러시아는 ‘전쟁을 계속하면 아시아의 러시아령 전부를 잃게 될 것’이란 루즈벨트 대통령의 설득을 받아들인다.

러시아는 만주와 조선에서 철수한다, 일본제국에 사할린 남부를 할양하지만 전쟁배상금은 없다, 조건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서구를 대신한 전쟁’이라는 일본의 논리도 상당히 통했다. 러시아 남하의 저지는 당시 서구 열강들의 공통 과제였기 때문이다. 힘겨운 전쟁에서 일본은 적극적인 외교 수완으로 승자의 체면을 지켰다. 이를 계기로 일본에겐 근대국가 건설을 완성하고 세계 열강에 진입하는 성공가도가 이어진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1885~87)도 제정러시아와 대영제국 사이의 패권경쟁의 연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위정척사’의 조선은 세계적 ‘그레이트 게임’의 대리자로 일본이 낙점되게 만들었다.

강화조약에서 일본 측 12개 평화조건 중 제1조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우월적 이익 및 권리를 승인할것’이었다. 그 외 러시아의 만주 철병 및 특권 포기(2조), 요동반도 조차권 및 남만주철도 권익 양도(3조 및 7조), 사할린 양도(5조), 전비 변상(9조), 오호츠크해·베링해·동해 연안의 일본어업권(12조) 등이다. 러시아는 전쟁의 승패가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주장하며, 국가적 위엄을 손상시킬 만한 영토할양이나 배상금 지불 등을 일체 거부했다. 일본 또한 국내여론을 의식해 배상과 영토할양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회담은 결렬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이 러시아 황제를 설득하고 또 일본에겐 배상을 포기하도록 하는 한편, 러시아가 사할린 남부 양도 선에서 타협해 가까스로 조약이 성사된다. 20세기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대 사건이었다.

러일전쟁 종전과 전후처리를 위한 포츠머스 회의 당시 서구 언론의 만평.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 대통령(가운데)이 러시아제국과 일본제국 사이 조약을 주선하는 모습이다. 이 공로로 루즈벨트는 현직 대통령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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