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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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하 사제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식 신부입니다." 지난 8월 29일 국회 소통관, 마이크를 잡은 김 신부의 표정은 사뭇 비장했다. 그는 6명의 사제단 신부, 그리고 안민석·김영배 두 민주당 의원과 함께 ‘정경심 교수 형집행정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 중이었다. "정경심 교수와 그의 일가족이 겪는 단장의 아픔은 바로 이 시대의 검찰개혁이란 깃발을 앞장서서 대신 들어준 후과로 얻은 것입니다."

시작부터 틀렸다. 조국네 가족은 검찰개혁 때문이 아니라 표창장 위조 등 숱한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비리, 그리고 증거인멸 등으로 인해 저 지경이 됐다. "정경심 교수의 형을 잠시 정지해 달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검찰의 행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입니다. 더불어 살인방조 행위입니다." 시작이 틀렸으니 그 다음 하는 말이 맞을 리는 없다. 형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검찰이 아니라 의사·교수·법조인·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구성된 검찰 내 심의위원회(위원회), 그 중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건 역시 의사니 말이다.

사실 디스크 파열이라 하니 위험한 상태 같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척추 디스크’다. 튀어나온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니 통증이 유발되지만, 대부분 그냥 놔두면 아문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수개월 지속된다면, 수술을 고려할 수 있다. 위원회가 열리기 전 정경심은 경기도 병원 두 곳에서 총 세 차례 진단을 받았다. 7월 말 A병원에선 ‘발끌림(foot drop) 소견이 관찰된다’며 빠른 수술을 권했다. 발끌림은 발목을 올리는 힘이 떨어져 발이 처지는 상태, 이때는 빨리 수술하는 게 맞다. 그런데 8월 초와 8월 말 정경심을 진단한 B병원에선 ‘보존적 치료를 해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고 근력저하가 악화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아 수술이나 재활치료를 권했다. 수술의 시급성이 떨어진다는 뜻. 위원회가 형집행정지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걸 보면 B병원의 소견이 더 타당하다고 본 듯하다. 여기에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경심을 직접 진찰한 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이라면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 수감자 중 안 아픈 사람은 거의 없기에, 그들 말을 다 들어준다면 감방에 남아있을 이는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사제단의 이번 성명은 참으로 한심하다. 의사들이 자신의 면허를 걸고 판정을 내렸는데, 환자 한 번 본 적 없는 이들이 간섭하는 것이잖은가. 임종석이나 고민정 같은 이들이 그러는 거야 정치인이라 그러려니 한다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할 종교인들이 나대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사실 사제단이 종교를 버리고 정치에 뛰어든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추미애 장관의 탄압을 받던 2020년 12월엔 "국민이 선출한 권력에 달려드는 통제 불능의 폭력성"이라며 비난 성명을 발표하더니, 대선을 앞둔 2월 7일엔 호소문이랍시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표한다. "이번 대선은 이성적 평화 세력에게 미래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주술 권력에 칼을 쥐어 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사제단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도 민주당스러웠다. 선교에 나간 여신도를 성폭행할 때 한 신부가 한 말이란다.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 사정이 이러니, 민주당 대표가 된 이재명 주변에서 사람들이 여럿 죽어나가는 것에 사제단이 침묵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1987년 5월 18일, 사제단 소속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이 조사되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독재권력에 맞서 진실을 폭로한 사제단의 용기에 시민들이 들고일어났고, 박종철 열사는 하늘에서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뒤, 사제단은 온갖 잡스러운 범죄는 다 저지른 정경심을, 그리고 그의 가족을 지킨답시고 이렇게 외치고 있다. "왜 아무도 묻지 않습니까? 저기 사람이 아파하고 있다고." 사제단에게 되묻는다. "여전히 자신의 몸을 어떻게 할 수 없나 보죠? 계속 헛소리만 하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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