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지난 8월 30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9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는 1945년 이래 미국과 더불어 군림했던 초강대국 소련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과 더불어 냉전을 종식시키고 소련마저 종식시켰다. 처절했던 역사의 한 시대가 종막을 고하게 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새로 탄생하던 1991년 12월 26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17년 공산주의의 혁명적 기치 아래 러시아제국을 붕괴시킨 후 건설됐던,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 소련은 73년의 실험 끝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아니 고르바초프라는 위대한 개명군주의 노력에 의해 막이 내려졌다.

소련은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세계 몇 안되는 나라였다. 하지만 공산당이 70년 이상 집권 했을 당시인 1980년대 후반 소련 국민들은 밥을 굶어야 했다. 영토가 대한민국의 200배가 넘었던 소련 국민들의 1인당 거주지 평수는 한국보다도 작았다. 이처럼 말이 되지 않는 현상을 개선하게 위해 고르바초프는 개선 혹은 개혁, 개방 등으로 이해되는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책을 전개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의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한 채 개선만 하려던 것인지, 혹은 체제를 통째로 바꾸려 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세월이 지난 후 우리는 고르바초프의 진심은 공산주의와 공산당은 안되겠구나 라는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소련 멸망 러시아 수립 몇 년 후, 그는 유럽의 한 기독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소련에 교회(러시아정교회)가 회복됐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신적 자유, 그리고 스스로 삶을 선택할 자유는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련이 붕괴되기 직전인 1989년, 미국 캘리포니아 초대형 교회인 크리스탈 처지의 로버트 슐러 목사를 초청해 하나밖에 없었던 TV 채널에서 설교할 수 있게 했다. 공산주의 그 자체를 종식시키려던 사람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훌륭한 인물은 역사를 바꾼다. 나는 고르바초프를 역사를 바꾸어 놓은 개명 군주같은 사람이라고 본다.

1985년 늦가을 미국과 소련 양국은 치열한 냉전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벽난로가 있는 아늑한 방에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레이건 이 물었다. "만약 외계인이 미국을 공격하면 소련은 미국을 도울 것이요?" 고르바초프는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레이건도 "우리도 그렇게 할 거요"라고 응수했다. 레이건과 더불어 냉전을 끝낸 주역, 고르바초프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