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개혁해야 나라가 산다] ⑩ 공공개혁, 국정철학과 국정비전의 문제

공공부문, 공공기관보다 훨씬 큰 개념...역대 정부 '공공부문=공공기관' 인식
공공부문 관련 정보 더 상세히 공시하고 비교하기 쉽게하는 작업부터 해야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 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정부가 자유 확대와 공공개혁을 위해 최우선으로 할 일은 말을 바로 잡고, 기획재정부 공무원의 협소한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기관이 아닌 공공부문 문제 전체를 보고,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정조준한 개혁 이념을 정립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들은 공공부문 혹은 공공기관 개혁을 공언했다. 공공부문은 정부와 정부에 의해 소유·지배되는 모든 영역을 의미하기에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공기관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역대 정부들은 공공부문을 공공기관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발간된 ‘윤석열 정부 120대 국정과제’에서 공공기관은 27번, 공공부문은 5번 언급됐다. 거의 다 공공기관을 의미한다. 말이 생각을 담는 그릇이 맞는다면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인식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정부 개혁이나 경제 개혁의 하나로 공공기관 개혁을 논할 때와 상위 범주 없이 공공기관 개혁을 논할 때의 문제의식은 달라진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기관 개혁을 정부개혁의 하위 범주로 설정했고, 그 전체를 아우르는 개혁 이념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를 구현하는 핵심 정책으로 규제개혁과 공기업 민영화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는 "섬기는 정부"와 "활기찬 시장경제"를 구현하는 핵심 정책으로 "예산 10%절감", "정부 기능과 조직 개편", "공공기관 경영혁신"을 제시했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정부·경제 개혁 노선은 영국의 대처 수상,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주도해 19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정부가 수용한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의 한국 판이다.

대처리즘의 핵심 개념은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 공정, 혁신, 법치 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 윤 정부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한국 현실에 맞게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은 복지부담이 아니라 복지 부족과 누수로부터 자유가 필요하지만 정부와 노조의 간섭·약탈로부터의 자유는 과거 영국보다 훨씬 절실하다.

김대중·이명박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는 신자유주의의 그늘에 주목했다. 주로 정치적·사회적 문제 해결 수단으로 공공기관을 바라보았다. 이 극단에는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적 공공부문 정책이 있다. 노무현 정부, 박근혜 정부는 그래도 공공부문·기관의 방만·비효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소프트웨어적으로 개혁(혁신·합리화·효율화)하려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으로 구체화한 정책의 원판은 120대 국정과제의 "소통하는 대통령, 일 잘하는 정부", "공공기관 혁신을 통해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 제공"이다. 이는 한마디로 노무현 정부, 박근혜 정부와 비슷하거나 더 온건하다. "공공기관 스스로 기능·인력 효율화 등 혁신 추진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여 자발적 혁신"을 유도한다는 것이 요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남의 눈 속의 티는 잘 보면서도 자기 눈 속의 들보는 잘 보지 못한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주로 기업과 민간의 허물을 바로잡는 것을 본령으로 삼기에 이들의 허물인 격차, 불안, 갑질, 일자리 등은 잘 보지만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한다.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와 총수 일가의 행태를 연구·성토하는 연구소나 시민단체는 있어도 정부와 공공기관의 허물을 연구·성토하는 곳은 거의 없다. 공공부문 개혁 담론이 빈곤할 뿐만 아니라 곁가지만 잡고 용쓰는 이유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기에 지방 공공기관과 그 협력업체들은 잘 보지 못한다.

대장동 게이트의 중심에 있는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지방공공기관통합공시시스템(cleaneye.go.kr)에 관련 정보가 약간 공시돼 있다.하지만 이 회사가 지배권을 가지고 김만배 등 일부 특수관계인에게 천문학적 수익을 몰아준 성남의뜰에 관한 정보는 없다. 사실 대장동 게이트는 지방자치분권 확대와 더불어 감시견제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중앙정부가 모르쇠 할 일이 아니다.

정치·사회·문화적 영향력이 큰 KBS, MBC,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사와 그 협력업체들도 공운법상 공공기관이 아니기에 논외일 것이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수많은 부실기업과 그 협력업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공공부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공무원 처우 수준 및 기준, 노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만큼 윤 정부는 자유 개혁과 공공개혁을 위해서는 공공부문 관련 정보를 더 상세하게, 더 비교하기 쉽게 공시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은 경제적 효율성의 눈이 아니라 정치적 현능성(賢能性)의 눈으로 봐야 한다. 한국에서 정치의 혼미·무능·저열이 너무 극심하고, 갈등이 너무 소모적인 것은 정치와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분야가 너무나 광대무변하기 때문이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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