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해군본부에 단단히 항의하리라 작심했던 게 얼마 전 정조대왕함이란 작명 때문이다. 최첨단 구축함에 그게 뭔 황당한 이름인가? 정조는 성리학적 질서를 믿었던 옛사람인데, 그런 그가 21세기 국토방위와 뭔 관련 있을까? 그걸 지적하는 목소리조차 드물다. 펜앤마이크 김용삼 대기자의 얼마 전 발언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이 나라 해군 전투함에 대한민국은 자취도, 뭣도 없다. 장보고함-신돌석함-이범석함(이상 잠수함), 뭐 그런 식이다.

을지문덕함-광개토대왕함-왕건함(이상 구축함)도 마찬가지다. 고대에서 시작해 일제시절로 끝난다. 거의 유일한 예외가 손원일함인데, 그는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다. 해군본부 작명 규정엔 호국영웅 이름을 쓴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막상 대한민국 인물은 눈에 불을 켠 채 밀어낸다. 물어보자. 북한이 두려워하는 김관진 장군은 왜 안 되지? 우리에겐 월남전의 명장 채명신, 원점 타격의 원조인 백골부대사단장 박정인 같은 영웅도 있지 않던가?

실은 이 글은 저번에 다룬 산업화의 아버지 김재관 박사 후속 칼럼이다. 그런 영웅이 왜 지금껏 익명이란 말인가? 그게 문제인데, 물론 1960~70년대를 어둠의 시대로 낙인찍어온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농간 탓이다. 하지만 그걸 방치한 건 엄연히 우리다. 잘 나가는 K방산-조선산업-자동차산업 태동이 김재관의 머리에서 나왔다면 정말 예삿일 아니다. 그의 이름 석 자로 주변과 일상을 장식하는 게 맞다. 그래야 제2, 제3의 김재관이 나온다.

일테면 현대차는 장차 나올 새 차 이름을 ‘김재관1975’이라 작명할 수 없을까? 1975년은 포니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해다. 조선소에서 만든 대형 선박이나, 특수선을 ‘김재관호’라 명명해도 좋고, 전기차연구소 내 김재관동(棟)이란 건물명도 영웅을 기리는 멋진 방법이 아닐까? 정말 한국인은 고마움을 모른다. 아니 자기가 누군지를 잊고 산다. 그 결과 이 나라에 대한민국은 자취도 없다. 21세기 지금은 오직 조선왕조 후기(後期)다.

보라. 광화문은 세종-이순신이 점령했고, 지폐도 율곡(1천원), 퇴계(5천원), 세종(1만원), 신사임당(5만원)의 몫이다. 이게 정상일까? 그건 공간배치나 기술상의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체제위기를 상징한다. 이 나라 관문 인천공항을 이승만공항으로, 고흥 나로호발사대를 박정희우주발사대로 바꾸는 식의 변화는 언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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