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김정식

며칠 전 17살 남학생과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남녀 성적 차가 너무 심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평균 점수가 거의 15~20점씩 차이 나고, 내신 1등급도 거의 여학생들이 싹쓸이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수학 경시대회, 모의고사 모두 마찬가지다. 다른 반,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상황이고, 공대에 다니는 학생의 누나 역시 "인원수는 남자가 많아도 장학금은 모두 여학우들이 받는다"라고 말했다 한다. 마지막으로 그 학생이 전한 말은 "남자애들도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그런데 여자애들이 훨씬 잘해요. 남자애들 엄청 좌절해요"였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남학생들이 내신 때문에 여학생 없는 남고로 전학하는 현상까지 일어난다. 이렇게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내는 상황은, 선진국에서 이미 10여 년 전부터 ‘소년위기’(The Boy Crisis)라는 주제 중 하나로 논의돼 왔다. 단순히 학교 현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별로 인한 수많은 편견이 깨지는 시대에, 우리 사회의 오류가 소년들을 어떤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일까. 단순하다. 자살률·범죄율 모두 여성에 비해 남성이 전 연령에 걸쳐 월등히 높다.

외국의 학자들은 ‘교직·교육의 여성화’를 소년들을 위기로 내모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거나 인간의 발달 과정에 대해 조금의 학문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녀가 발달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것이다. 어른들이 흔히 "남자애들은 몸으로 놀아주어야 한다"라는 말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육교사나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남녀 성비를 따져보면 약 3:7, 많게는 2:8 수준까지 차이가 난다. 남성 교사에게 언어 교육(읽기/쓰기 등)을 받은 남학생이, 여성 교사에게 언어 교육을 받은 남학생에 비해 유의미한 수준의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여성 교사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필자는 이것을 ‘남성성의 전수와 함께 이루어지는 지식 전달’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삶의 지혜’ 정도로 표현하면 여성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줄까.

수년간 이해하기 어려운 급진적 주장과 함께 ‘남성성’을 거세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해 왔다. ‘퐁퐁남’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우리 사회를 휩쓸었고, ‘아빠’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나아가 ‘남성성’을 야만적인 것으로, ‘여성성’을 세련되거나 고급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한 듯 바뀌어 왔다. 성별의 특징을 문제 삼으며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리기까지 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남성을 폭행하는데도, 피해자는 성범죄자로 몰릴까 두려워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한다. 여학생들의 장난 섞인 신고 전화에 성범죄자로 낙인찍힌 중년의 남성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서야 무죄를 인정받았다.

남성과 여성이 상호 의지하며 발전시켜 온 수백만 년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각 특성을 고도화해야 함이 마땅하다. ‘남자’를 ‘남자’로 키워야 사회에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테네는 스파르타에, 로마는 게르만 용병에, 송나라는 몽골(원)에 멸망했다. ‘남성성’을 잃은 집단이 야만으로 묘사되는 ‘남성성’을 유지한 집단에 의해 멸망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중·러는 ‘남성성’을 잃은 국가인가, 유지하는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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