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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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공이 은폐되거나 왜곡돼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 중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더불어 A+를 받아야 할 박민식 보훈처장이 한 말이다. 그가 지칭한 ‘그분’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뿌리내린 업적이 있음에도 재임 시 저지른 잘못들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는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박민식의 말을 더 들어보자. "사실 젊은 세대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 하면 3·15부정선거와 독재자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고, 명백한 업적마저도 폄훼되고 무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해도 되지만, 최소한 그의 공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평가를 해줘야 한다는 뜻. 국민의 절대다수가 원했던 공산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게 가장 큰 공이지만, 한미동맹 체결도 평가받을 업적이다. 미국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중시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고 착각하는 이도 있지만, 정재용 기자가 쓴 <대통령과 한미동맹>을 보면 이건 이승만이 구사한 벼랑끝 외교의 결실이었다. 해당 내용을 요약해 보자.

1953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북한의 침략을 받아 전 국토가 폐허가 된 그때, 이승만은 미국과 동맹을 체결하지 못하면 안보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 상황에 너무 깊이 연루되는 것을 꺼렸는데, ‘국가’라고 하기엔 너무도 처참했던 우리나라 입장에선 미국을 압박해 동맹을 체결할 수단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은 미국이 6·25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북한·중국과 정전협정을 추진했을 때, 이를 의도적으로 방해했다.

‘휴전반대’ ‘북진통일’을 주장한 데 이어 "1953년 6월 18일에는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7000명을 일방적으로 석방했다." 결국 미국은 "휴전협정 체결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게 됐다." 이는 세계 최약체국인 한국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한 기적에 가까운 외교적 승리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은 한미동맹으로 안보불안을 해결한 덕분이니, 이 공로는 인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 지금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을 벌이고 있지만, 이것의 원조는 어디까지나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것도 알아두자.

그런데도 이승만에 대한 폄하는 집요할 정도다. 분단의 책임을 이승만에게 덮어씌우는 거야 쥐꼬리만큼의 단서라도 있지만,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를 ‘친일파 정권’으로 몰아붙이는 건 언어도단이다. 이승만은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분, 그래서인지 해방 이후 일본에 대한 이승만의 태도는 시종 적대 일변도였다. 일본과 수교하라는 미국의 권유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았고, 일본인이 다시 한국땅을 밟는 게 싫다는 이유로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지는 월드컵 지역예선을 모두 일본에서 열기도 했다.

당시 이승만이 했던 말이 "지면 현해탄에 빠져 고기밥이 되어라"였으니, 반일 드라이브를 건다고 해놓고 자기 딸을 일본에 유학보내고, 렉서스를 타는 위선자들과는 격이 달랐다. 비단 초대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독립군으로 청산리 전투에도 참여한 이범석이 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는 등 초대 내각의 거의 전부가 항일투사로 채워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제 치하에서 일하던 공무원들이 해방 이후에도 하던 업무를 계속했다는 걸 빌미로 대한민국 정부를 친일파 정권으로 매도하고, 해방 후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게 다 친일청산이 안 돼서 그렇다’는 헛소리를 하는 건 왜일까. 한국 정부를 친일파로 매도해야 북한의 정통성이 살아나기 때문일까?

이유가 뭐든,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좌파들 말대로 우리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그건 친일청산을 못해서가 아니라, 초대대통령의 공과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해서일 테니까. 박민식 처장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자. "대한민국에서 반도체나 자동차, 전투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신을 바로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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