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예상했던 일인 만큼 놀랄 일도 아니다. 북한이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7차 회의를 열고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면서 ‘핵무기의 사용조건’을 명기했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경우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뜻을 법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미국과 남조선은 알아들어라’는 소리인데, 그 내용이 참 가관이다.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의 공격을 받거나, 또는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지도부에 대한 핵 및 비핵 공격을 받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가의 중요 전략적 대상들(=시설 등)이 공격을 받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유사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작전상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 등이다. 한마디로, 김정은이 하고 싶은 대로 언제든 핵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가 막힌다.

핵무기는 애초에 선제공격용이 되기 어려운 것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인류사회가 핵 위력을 처음 경험한 이후, ‘상호확증파괴’라는 묵시적 인식이 자리잡아 왔다. 누구든 먼저 핵을 쓰게 되면 반드시 핵 공격을 당한다는 인식 때문에 ‘핵 선제공격’은 일종의 금기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북한은 자기네들 임의의 판단에 따라 선제 핵공격이 가능하도록 법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정책’ 의도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예방적 안보 개념인 우리의 ‘킬 체인’을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것, 둘째는 우리에게 ‘핵 공포’를 가중시키면서 한미 이간, 남남(南南)분열의 노림수다. 김정은은 이번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북) 정권의 붕괴"라면서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미국에 덮어씌운 것이다.

북한 핵의 용도는 명확하다. 세습독재정권 유지-한미동맹 파괴-남한 접수 목적이다. 종전선언·평화협정도 이 구조 안에 있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전략을 정확히 알고 한미 협력으로 ‘자위적 핵균형’을 마련하면 북핵도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대상을 알면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독일 철학자 헤겔의 말은 이련 경우 유용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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