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공적연금처럼 법적 지급 의무가 있어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이 내년부터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연합
4대 공적연금처럼 법적 지급 의무가 있어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이 내년부터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연합

내년부터는 4대 공적연금, 건강보험, 지방교부세 등 정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이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 이는 재량지출을 통한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그만큼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현재의 인구감소와 성장률 하락 흐름이 이어질 경우 2060년에는 의무지출 비중이 전체 예산의 80%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2일 기획재정부의 2022∼2026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639조원 가운데 53.5%인 341조8000억원은 의무지출이다. 의무지출은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 건강보험, 지방교부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예산이다.

예산 중 의무지출 비중이 커질수록 정부가 정책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재량지출은 쪼그라들게 된다. 재량지출 중에서도 쉽게 줄일 수 없는 국방비와 인건비 등 경직성 재량지출을 제외하면 사실상의 재정 여력은 더욱 빠듯해질 수밖에 없다.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연금 지출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의무지출 비중은 계속 늘어나고, 재량지출 비중은 줄어드는 것이 불가피하다. 실제 올해부터 2026년까지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5%지만 재량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1.5%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예산 중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을 나눠 집계한 2012년 이후 올해까지 2018년 50.6%, 2019년 51.0%를 제외하고는 의무지출 비중이 50%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년 53.5%를 시작으로 2024년 54.0%, 2025년 54.7%, 2026년 55.6%로 의무지출 비중이 매년 늘어난다. 그만큼 재량지출 비중은 줄어든다. 정부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최악의 시나리오 땐 2060년 의무지출 비중이 80%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정부의 정책 대응이 없어 현재의 인구감소와 성장률 하락 추세가 유지되는 경우 2060년 총지출은 1648조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의무지출은 78.8%인 1297조9000억원에 달하게 된다는 추산이다. 생산성 향상으로 성장률 하락세가 완화되는 시나리오에서는 의무지출 비중이 75.1%, 출산율 제고로 인구 감소세가 둔화하는 시나리오에서는 76.8%로 각각 추계됐다.

내년 의무지출 341조8000억원 중 91.1%를 차지하는 것은 복지 분야의 법정지출과 교부세·교부금 등 지방이전재원이다.

복지 분야 법정지출은 154조6000억원으로 전체 의무지출의 45.2%다. 4대 공적연금 지출이 67조7000억원으로 가장 많다. 또 구직급여 등 고용·노동부문 지출이 22조1000억원, 기초연금 등 노인 부문 지출이 20조8000억원이다. 생계급여를 비롯한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출은 17조9000억원, 건강보험 지출은 12조원이다.

지방이전재원은 156조9000억원으로 전체 의무지출의 45.9%다. 지방교부세가 75조3000억원,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77조3000억원이다. 복지 수요가 늘면서 복지 분야 법정지출과 지방이전재원은 앞으로도 의무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지방이전재원이 복지 분야의 법정지출보다 많지만 2024년부터는 복지 분야 법정지출이 지방이전재원을 추월하게 된다.

의무지출에는 나랏빚에 따른 이자지출도 있는데, 국가채무 증가와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내년 22조9000억원에서 매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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