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체의 국내외 시설투자는 크게 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정원철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왼쪽부터)가 3나노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체의 국내외 시설투자는 크게 늘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정원철 상무,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왼쪽부터)가 3나노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와 과학법 등 미국발 악재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국내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공세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당면한 위기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기회를 확실하게 잡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다.

특히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는 설비투자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지난 2018년 대호황 이후 부진을 거듭하던 반도체산업은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DX)이 급속도로 이뤄지면서 오랜만에 호황을 맞이했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공급과잉과 재고 증가 등의 문제가 겹치며 예상보다 일찍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국내 반도체 업계는 역발상으로 접근, 설비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불황에도 국내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이 설비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는 이유는 명료하다. 신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만이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방책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2012년과 2015년 SK하이닉스는 반도체 불황과 영업손실 상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46조원 이상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그 결과 2017년부터 2년 동안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현재는 키옥시아, 마이크론 등 경쟁사를 제치고 업계 2위까지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23조원을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에 제2 파운드리 공장의 착공에 돌입한다. 이 공장은 500만㎡ 규모로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에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 생산을 담당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2046년까지 263조원을 들여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 11곳을 신설하는 중장기 사업도 구상하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7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시설인 평택 캠퍼스 3라인(P3)을 가동했다.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낸드플래시의 대규모 생산을 통해 미래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2위인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에 약 6만㎡ 규모의 M15X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5년에 걸쳐 15조원을 투입해 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M15X 신규 공장이 완공되면 기존의 생산 능력까지 합쳐 월 30만장 이상의 낸드플래시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해 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의 추격을 따돌리고 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신공장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다음달 착공에 들어간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시행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는 등 긍정적인 대외 여건이 조성된 국내 배터리 업계도 설비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일본 완성차업체 혼다와 5조1000억원 규모의 40기가와트시(GWh) 전기차 배터리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혼다 전기차 모델에 들어갈 파우치형 배터리셀과 모듈을 양산할 예정이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은 그동안 인건비 등 투자비용 상승을 이유로 무기한 연기했던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애리조나주 배터리 공장 건설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제1·2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SK온은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와 함께 블루오벌SK를 설립했다. 2028년까지 10조2000억원을 투입해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배터리 공장 3곳을 짓기로 했다. 이를 통해 SK온의 북미 생산 능력은 현재 10기가와트시에서 150기가와트시로 대폭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DI는 미국·프랑스·이탈리아 3국 합작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3조30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23기가와트시 규모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한다. 가동 시기는 2025년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7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통계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31.1기가와트시로 1위를 차지했다. SK온은 15.5기가와트시로 4위, 삼성SDI는 12기가와트시로 5위에 랭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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