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사후 국제질서 어떻게 재편될까?

에든버러 홀리우드 궁전 도착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운구 행렬, 고인은 11일(현지시간)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동북부 밸모럴성을 떠나 영면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AFP=연합
에든버러 홀리우드 궁전 도착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운구 행렬, 고인은 11일(현지시간)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동북부 밸모럴성을 떠나 영면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AFP=연합

8일(현지시간) 96세의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 70년은 냉전·탈냉전기와 겹친다. 20세기 역사의 가장 극적인 역사의 대목들이다. 여왕의 타계를 계기로, ‘영연방’(Commonwealth)의 미래가 새삼 주목받게 됐다. 영연방이란 영국 및 영국식민지 출신 56개 독립국으로 이뤄진 느슨한 형태의 정치·경제 연합체를 말한다. 영국을 포함한 15개국에서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을 맡아 왔다.

영연방의 최대 고민은 현재적 미래적 실리나 자부심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과거사의 비극을 일깨울 뿐이라는 점이다. 영연방에서 이탈할 국가들을 향해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외교는 냉전기·탈냉전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한 상황과 변수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1952년 숙부 에드워드 8세가 결혼문제로 갑자기 퇴위하자 졸지에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2세지만, 영연방의 결속력을 높이고자 애썼고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영국의 영향력 쇠퇴와 존재감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영국의 유명 매체 인사이더에 따르면 "영연방이 식민지출신 국가들의 클럽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여왕의 죽음으로 회원국들이 더욱 영연방에 의문을 가지며 거리두기를 할지 모른다"는 분석이다. 여왕의 뒤를 이은 찰스 3세에게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카리스마를 기대할 전망도 없다. 올해 4월 영연방의 하나인 캐나다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5%가 "찰스 왕세자를 왕으로 인정 못한다"고 답했다.

가혹한 착취의 대상이 됐던 식민지 출신 국가들인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15∼19세기 아프리카로부터 팔려 와 플란테이션 농장에서 일한 노예의 후예들, 즉 카리브해 국가들로부터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한 입헌군주제의 폐지, 노예제 피해에 대한 보상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고 주요 외신들이 내다봤다. 작년 바베이도스는 독립 55년 만에 최초의 대통령을 선출, 더 이상 여왕을 국가 수장으로 받들지 않게 됐다. 비슷한 움직임이 자메이카·바하마·벨리즈 등 카리브해 연안국들에서 진행 중이다. 윌리엄 왕세자 부부는 3월 카리브해 3국을 방문했다가 식민지배와 노예제에 대한 배상 및 사과 요구의 목소리를 만나야 했다.

영연방의 일원 자메이카의 총리도 공화정을 원한다는 사실을 천명했으며, 벨리즈에선 왕세자 후원의 재단과 토지 분쟁을 겪는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자메이카에서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영국 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군주제를 폐지할 것에 찬성했다.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루시아의 앨런 채스터넷 전 총리 역시 "공화국이 될 것을 확실히 지지한다"고 로이터에 밝힌 바 있다.

바하마 국립배상위원회 니암비 홀 캠벨 또한 "여왕의 서거는 우리 지역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논의를 진전시킬 기회"라고 강조했다. 한편, 발언권을 높여 온 지역 패권국 인도가 치밀하면서 담대한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끈다. 영국이 인도에서 수탈해간 것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식민지기 200년간(동인도회사 시절 제외)만 따져도 45조 달러(6경 원 상당)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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