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풍력에너지 전문기업 챌리너지(Challenergy)가 필리핀의 바탄섬에 설치한 10㎾급 태풍 발전기 프로토타입. 이 발전기는 태풍이 뿜어내는 최대 초속 40m의 강풍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 /Challenergy
일본 풍력에너지 전문기업 챌리너지(Challenergy)가 필리핀의 바탄섬에 설치한 10㎾급 태풍 발전기 프로토타입. 이 발전기는 태풍이 뿜어내는 최대 초속 40m의 강풍에서도 작동이 가능하다. /Challenergy

대형 태풍 하나의 위력은 원자폭탄의 1만배에 달한다. 지난 6일 한반도에 상륙한 11호 태풍 ‘힌남노’ 역시 중심기압 955.9hPa의 가공할 파괴력을 과시하며 15명의 인명과 1만5602㏊의 농작물, 1만4000여곳의 침수라는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남겼다.

앞으로도 힌남노를 능가하는 슈퍼태풍의 출현은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태풍은 따뜻한 바다에서 생성된 수증기와 열에너지를 먹이로 삼는데 지구온난화가 양질의 자양분이 되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태풍이 가진 힘을 파괴가 아닌 인류에게 유용한 에너지로 활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며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태풍 속 바람에너지=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처(NOAA)에 따르면 직경 1300㎞급 태풍은 자신의 수명주기 동안 바람과 구름, 비를 통해 전 세계 발전량의 무려 200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론상 슈퍼태풍 하나의 에너지만 온전히 전력으로 전환해도 지구촌 전체가 전력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중 우리가 태풍으로부터 가장 손쉽게 빼앗아 쓸 수 있는 에너지는 바람이다. 풍력발전기라는 도구를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태풍에 내재된 바람에너지의 양도 글로벌 전력 생산량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기존 풍력발전기술은 태풍에는 무용지물이다. 태풍은 풍력발전기가 견딜 수 있는 풍속의 마지노선을 훌쩍 뛰어넘는다. 세계기상기구(WMO) 기준 태풍의 최대풍속은 초속 33m인 반면 풍력발전기의 설계 한계는 대략 초속 25m선이다. 이보다 바람이 강하면 날개(프로펠러)의 회전이 너무 빨라져 과열·화재 등 고장이 난다. 날개가 휘거나 부러질 수도 있다.

한국에너지공단 관계자는 "잠재적 발전이익보다 고장에 따른 손해가 더 크기에 풍력발전 사업자들은 태풍이 오면 아예 발전기를 정지시켜 놓는 것이 상례"라고 설명했다.

◇프로펠러 없는 풍력발전=이에 공학자들은 그동안 풍력 발전의 판도를 바꿀 태풍 발전기의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날개를 없애 내구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술적 핵심이다.

현재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기술은 일본 챌리너지(Challenergy)의 ‘마그누스 수직축 풍력터빈(Magnus VAWT)’이 꼽힌다. 이 장치는 날개 대신 2~3개의 수직 원통이 회전하며 발전에 필요한 동력을 발생시킨다. 물체가 유체 속에서 회전운동을 하면 유체의 흐름과 수직 방향으로 힘이 작용하는 물리현상인 ‘마그누스 효과’를 풍력 발전에 적용한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마그누스 VAWT는 최대 초속 40m의 태풍급 강풍에서도 발전이 가능하다. 원통형인 덕분에 날개형과 달리 360도 전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발전에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메리트다.

챌리너지는 2018년부터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 바탄섬 등지에 높이 20m, 직경 6m의 10㎾급 축소모델을 건설하고 성능을 실증하고 있다. 지난해 태풍 ‘찬투’를 맞아 최대 초속 84.3m의 악조건 속에서 11㎾의 순출력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기술 고도화를 거쳐 2025년 아시아·중남미를 겨냥한 100㎾급 상용모델을 출시한다는 목표다.

◇해상 부유식 태풍발전단지=지난 8월에는 노르웨이의 풍력 발전 스타트업인 월드 와이드 윈드(WWW)가 틀을 깨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VAWT에 기반한 해상 부유식 태풍 발전기가 그것이다.

WWW는 무거운 로터와 밸러스트를 하단에 배치해 발전기가 수면 위로 뜨게 만들 계획이다. 또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하는 2개의 VAWT를 위아래로 연결함으로써 각각의 마그누스 효과를 상쇄시킬 생각이다. 발전기가 한쪽으로 계속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물론 해류나 강풍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발전기는 해저 바닥에 케이블로 고정된다.

WWW에 의하면 VAWT가 2개인 데다 발전기의 높이를 최대 400m까지 키울 수 있어 일반 고정식 해상풍력발전기 대비 건설비는 절반, 발전량은 2.5배 늘릴 수 있다. 날개가 없는 만큼 동일 공간에 4배나 촘촘히 설치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아직 개념정립 단계지만 2029년까지 40㎿급 해상풍력단지를 먼바다에 세우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군산대 해상풍력연구원 관계자는 "기존의 풍력 발전이 조금씩 전력을 모으는 ‘적금’이라면 태풍 발전은 방대한 전력을 일거에 거머쥐는 ‘로또’인 셈"이라며 "상용화가 이뤄지면 우리나라처럼 바다와 접한 국가들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일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풍력 발전 스타트업 월드 와이드 윈드가 지난달 공개한 해상 부유식 풍력발전단지 개념도. 2개의 원통형 수직축 풍력터빈을 활용해 고정식 해상풍력발전기보다 2.5배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기울어져 태풍급 강풍에도 끄떡없다. /World Wide Wind
노르웨이의 풍력 발전 스타트업 월드 와이드 윈드가 지난달 공개한 해상 부유식 풍력발전단지 개념도. 2개의 원통형 수직축 풍력터빈을 활용해 고정식 해상풍력발전기보다 2.5배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바람에 따라 자유롭게 기울어져 태풍급 강풍에도 끄떡없다. /World Wide W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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