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경북 안동에 위치한 SK바이오사이언스 L하우스 직원들이 포장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SK바이오사이언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내 바이오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사진은 경북 안동에 위치한 SK바이오사이언스 L하우스 직원들이 포장 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SK바이오사이언스

1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가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국내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에 이어 바이오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표면적으로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려는 의도지만 전기차·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국내 바이오 업계에 불똥이 튈 모양새다. 미국 내에서 바이오 연구·제조를 사실상 강제하고 나선 만큼 위탁개발생산(CDMO)을 위주로 해오던 국내 바이오 업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행정명령의 구체적 시행 방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 등 해외의 바이오 공급망을 강력한 국내 공급망으로 대체하겠다고 강조하면서 해외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앞서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처럼 바이오산업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미국에 생산공장을 지어야 할 수 있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등 미국 제약업체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에 수출한 바이오의약품은 4486억원 규모로, 이는 전체 매출 1조5680억원 가운데 28.6%를 차지한다.

셀트리온은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항암제 램시마와 관절염 치료제 트룩시마 전량을 인천 송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램시마와 트룩시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각각 22.6%, 25.4%다. 또 셀트리온은 미국의 제약업체 테바와 테바의 편두통 치료 신약인 아조비의 원료의약품을 위탁생산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공급 계약금액은 3530억원에 달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도 코로나19 백신 노바백스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위탁개발생산 시장은 올해 217조원에서 2026년 310조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바이오산업이 반도체와 함께 주요한 미래 먹거리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에 국내 바이오 업계는 올해를 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국내 투자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행보가 눈에 띈다. 지난 7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 11공구에 제2바이오캠퍼스 부지를 선정했다. 이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총 7조원을 투입해 4개의 생산시설을 구축할 예정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오는 2024년까지 약 2000억원을 투자해 경북 안동 공장을 증설하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1조원 규모의 위탁생산공장을 충북 오송과 인천 송도 가운데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 업체들이 미국 등 해외 생산시설 설립을 망설인 이유는 현지의 높은 설비투자 비용과 인건비 등 비용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발 바이오 악재가 터지면서 국내 바이오 업체들이 국내 투자 계획을 축소하거나 재검토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현지시간 14일 국가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나와야 향후 대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투자 방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전기차·배터리 분야처럼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기업에 한 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세부 사항이 공개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14일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미국의 경우 사안마다 다르지만 정책마다 90일에서 1년간 준비 기간이 있는데, 바이오의 경우 180일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구체적인 안을 마련한다"면서 "미국 정부의 움직임을 계속 파악하고 한미 양국 간 협의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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