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근
이춘근

잘못된 역사 지식이 압도적으로 국민의 인식을 지배하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을 한반도 분단의 책임국으로 보는 것이다. 2차대전이 끝나기 불과 4일 전인 1945년 8월 11일, 서둘러 38선이라는 군사경계선을 생각해 낸 나라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분단시킨 나라는 소련이었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두 곳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독일이 항복한 후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18개월을 더 싸워야 했다. 미군의 희생 역시 100만이 넘을 것이리고 예상했다. 미국은 특히 만주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인 관동군에 대해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은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과 함께 싸우고 있었던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도 참전할 것을 기대하고 종용했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소련은 독일 항복 후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할 것을 미국과 약속했다.

그러나 소련은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후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은 7월 16일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8월 6일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폭을 투하했다. 스탈린은 핵폭탄의 위력과 일본의 실제 상황을 트루먼 대통령보다 훨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소련과 일본은 평화조약을 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소련 역시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일본이 곧 패망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8월 9일 새벽 0시 일본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한다. 다 죽어가는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당일 소련군은 함경북도로 진격했고 북한지역을 폭격했다.

전세가 급변함을 보고 당황한 미국은 11일 새벽 급히 38선이라는 군사분계선을 고안, 한반도를 소련과 공동 점령하자는 계획을 세운다. 38선을 구상했던 러스크 장관(당시 대령)은 ‘소련이 38선 제안을 받아들여 오히려 놀랐다’고 회고했다. 38선 부근의 거점도시부터 먼저 장악한 소련은 남한과 연결되는 전화선을 차단했다. 우체국을 폐쇄하고 송전선·철도·도로 등도 모두 차단했다. 9월 6월 해주-서울 간 전화가 차단됨으로써 남북한 통신은 완전히 두절됐다. 물론 사람들의 왕래도 막혔다.

미국이 군사적인 편의조치로 제안했던 38선을 이의없이 받아들인 소련은 즉각 북한을 소련화(Sovietization)시켰다. 자신의 위성국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38선 이북을 공산주의 통치 지역으로 만들어 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분단시킨 나라는 소련이었다. 이 조치들은 미군이 남한지역에 진주하기도 전에 이뤄졌다. 미군은 9월 8일 인천을 통해 한반도에 진주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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