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북미 지역에서 생산·조립한 전기차에 한해 7500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부여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격 시행됐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낙5. /현대자동차그룹
지난달 북미 지역에서 생산·조립한 전기차에 한해 7500달러의 보조금 혜택을 부여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전격 시행됐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아이오낙5. /현대자동차그룹

국내 자동차 업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미국 정부가 북미 지역에서 생산·조립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아울러 북미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한 배터리와 중국산 리튬·코발트·니켈 등 배터리의 핵심광물·부품이 사용된 전기차 역시 2024년부터 순차적으로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지난달 16일 전격 시행됐다.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중국 배제와 미국 내 생산이 강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계는 뜻하지 않게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특히 테슬라와 함께 미국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오닉5와 EV6 등 의 전기차 모델은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1000만원 상당의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더욱이 전기차 누적 판매량이 연간 20만대를 넘으면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조항도 사라지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간 누적 판매량 제한이 사라지면 전기차를 대량 생산하고 있는 테슬라와 GM, 그리고 포드보다 시장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 아이오닉5의 가격은 3만9950달러(5500만원)로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기존의 보조금 혜택을 받았을 때 가격인 3만2450달러(4500만원)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 조립·생산하고 있는 테슬라와 포드, GM 등은 보조금 혜택을 고스란히 받는다. 특히 아이오닉5의 경쟁 기종인 테슬라의 ‘모델3’ 출고 가격은 4만6990달러로 보조금 혜택을 받게 되면 3만9490달러까지 떨어진다. 다른 경쟁 모델인 포드의 머스탱 마하E도 출고 가격이 4만4000달러에서 3만6500달러로 낮아진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은 3만4000대를 기록했다. 현재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그룹은 26만대의 테슬라에 이어 2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뒤를 포드(2만3000대)와 폴크스바겐(1만7000대), GM(8000대) 등이 바짝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대차그룹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한다면 2위 자리 마저 위태로운 상황인 셈이다.

이에 현대자동차그룹은 2025년으로 예정된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신공장 건립을 앞당겨 조기에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이미 가동하고 있는 미국 앨라배마주 내연기관 자동차 공장을 일부 전기차 생산시설로 전환해 연말부터 제네시스의 전기차 GV70을 생산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은 당분간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대량생산까지는 빨라야 2024년 하반기로 예상된다. 2년여의 공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전기차를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독일·일본 등 경쟁업체들이 수년 내 현대자동차그룹을 앞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 올해 7월부터 독일의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 전기차 ID.4의 생산을 시작했다. 폴크스바겐은 내년부터 연간 전기차 9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달부터 미국 앨라배마주 공장에서 전기차 EQS SUV를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일본의 닛산, 스웨덴 볼보 등도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 중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국내 자동차 업계의 우려가 주요 의제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개정을 목표로 전기차 보조금 규정의 유예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자동차 업계가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순방길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북미 생산 조건이 즉시 시행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미국 전기차 공장 완공 예정 시기인 2025년까지 인플레이션 감축법 적용을 연기할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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