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수요 부진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대기업의 재고 자산이 지난해 동기보다 큰 폭 증가했다. 사진은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IFA2022에서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이 전시된 모습. /삼성전자

TV·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와 달러 초강세 여파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수요 부진이 이어진 탓이다.

일반적으로 재고는 경기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의 재고 증가세는 지난해 2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오르는 이례적 상황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요 대기업의 올해 상반기 재고 자산은 26년 만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기업들은 생산라인 가동률을 낮추며 재고 관리에 힘쓰고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지속되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19일 대한상공회의소의 올해 2분기 산업활동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의 재고자산은 지난해 2분기 61조4770억원에서 올해 2분기 89조1030억원으로 1년 새 28조원가량 불어났다. 재고자산은 시중에 바로 팔 수 있는 상품재고와 생산과정에 있는 원재료·반재료 등의 자산으로 나뉜다. 이 중에서도 상품재고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재고자산이 눈에 띄게 폭등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52조922억원 규모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지난해 33조5924억원과 비교해 55%나 뛰었다. LG전자는 전년 동기 8조3275억원에서 올해 9조6844억원으로 늘었다.

삼성전자의 재고자산이 50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전·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DX부문은 재고자산이 지난해 상반기보다 21.3% 증가했다. 반도체 중심의 DS부문은 30.7%, 디스플레이는 21.8% 상승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가 보유한 전체 자산에서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의 9.7%보다 1.9%포인트 상승한 11.6%로 집계됐다. LG전자도 생활가전·TV·전장 등 주요 사업부의 재고자산이 지난해 말보다 상승했다.

이 같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재고자산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코로나19 특수는 물론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 전에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리 제품을 초과 생산한 탓이다. 판매 부진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오버슈팅’을 했다는 것이다. 오버슈팅은 외부 충격 때문에 제품 가격이 일시적으로 폭등했다가 천천히 진정되는 현상이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제품 출하가 늦어진 것도 재고자산 급증에 한 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전제품의 수요는 유행을 따른다. 소비자들은 해마다 바뀌는 스펙으로 구매를 결정한다. 하지만 철 지난 재고로는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할 수 없다. 결국 재고자산은 팔리지 않는 악성 재고로 이어진다. 이에 기업들은 생산라인의 가동률을 낮추고 프리미엄 제품 출시 등 재고 처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TV 등 가전 생산라인 가동률을 1분기 84.3%에서 2분기 63.7%로 낮췄다. 휴대전화는 81%에서 70.2%로 감산에 들어갔다.

LG전자도 재고관리를 위해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등 주요 생활가전 제품의 2분기 가동률을 1분기보다 크게 낮췄다. 특히 TV 생산라인 가동률을 1분기 87.8%에서 2분기 72.5%로 대폭 축소했다. 그 여파로 올해 2분기 LG전자 TV사업부는 지난 2015년 2분기 이후 7년 만에 189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제히 공장 가동률을 낮추면서 올해 하반기 생산·투자는 더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업들이 공장 가동률을 낮추게 되면 유휴 인력이 발생하고, 그만큼 고용과 신규 시설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 악화로 인해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고 무역적자가 심화하는 등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동안 오버슈팅돼 왔던 제품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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