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황근

방송은 다른 매체들보다 강한 규제를 받고 있다. 공적 재산인 무선주파수를 사용하는 것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 때문이다. 이 근거들은 결국 방송의 공익성(public interest)으로 귀결된다. 지상파방송 독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수히 많은 유료 방송들과 인터넷 매체들까지 쏟아져 나오는데도, 여전히 강한 규제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익이라는 용어는 매우 추상적이고 다의적이어서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방송이 출현한 지 한 세기 넘게 공익이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지만, 아직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다. ‘반(反)공익적이지 않은 방송’이라는 자조적인 정의가 가장 그럴듯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방송법처럼 여러 공익적 책무들을 나열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후반 규제 완화(deregulation) 추세에 맞춰,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방송사업의 소유·겸영 완화, 자율규제 및 사후 규제 전환이 꾸준히 확대되어왔다. 우리나라 역시 2009년 미디어법 개정으로 방송규제 완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IPTV 도입, 종합편성채널 허용 등은 우리 방송시장을 다원화시키고 경쟁을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권은 공익성을 명분으로 방송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으로 다시 회귀했다. 언론노조를 대리인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정부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관변매체들에게 공영방송이란 명찰을 붙여 정권 호위 방송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정권 친화적이지 않은 종합편성채널들을 통제·압박하기 위해 재승인 제도를 이용했다.

인·허가제도는 사업의 존폐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규제다. 그래서 방송사업 허가가 취소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몇 번 안된다. 특히 공익이라는 추상적 이유로 취소된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재허가·재승인 제도는 내용적 측면보다 ‘절차적 정당성’(procedural legitimacy)이 더 강조되고 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권은 공익을 명분으로 재허가·재승인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공영성·공정성·공영성·사회적 책무 같은 유사한 평가항목들을 대폭 늘려 공익성 관련 배점을 크게 높였다. 더구나 공정성 항목은 전체 총점과 관계없이 기준 점수를 넘겨야 하는 이중장치까지 걸어 놓았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공익 평가에 중복평가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 목적에서 자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경영·기술·법률·시청자 분야에서 선발하는 심사위원 구성 방식도 문제다. 방송과 시청자 영역은 관행적으로 여·야가 안배하고, 나머지 전문분야는 관련 단체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중요한 점은 모든 심사위원이 모든 분야를 다 심사한다는 것이다. 자기 분야 이외에는 전문성과 무관한 인상 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기술·법률·경영 분야는 외부 전문기관의 평가를 반영하는 방식을 제시해왔다.

더구나 방송법에 5년 이하로 되어 있는 재허가·재승인 기간보다 적은 3~4년을 적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재허가 기간이 보통 5~10년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과잉규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사업자들 사이에서 "재허가·재승인받으면 바로 차기 심사보고서 작성에 들어가야 한다"는 웃픈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이처럼 허술한 심사제도는 결국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지난 정권은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최대한 악용했다. 최근 TV조선이 지난 재승인 심사의 불법성을 문제 삼고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현행 심사제도의 문제점을 보면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지난 정권 초기 한 여권 인사의 "행정행위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라는 말이 결코 헛말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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