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모자

 

학교 마루 구석에
헌 모자 하나.
날마다 혼자 남는
헌 모자 하나.

학교 애들 다 가고
해질녘이면
가고 없는 주인이
그리웁겠지.

월사금이 늦어서
꾸중을 듣고
이 모자 쓰지도 않고
나간 그 동무,

지금은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보름이 지나도록
아니 옵니다.

이원수(1911~1981)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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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어린이의 정서를 읊는 시다. 어른이 어린이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피카소는 말년에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린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이 말은 문학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월사금(月謝金)은 다달이 내는 수업료다. 법정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헌 모자’가 창작되던 그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이 월사금을 거두었다. 일부 못난 교사는 제때 월사금을 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창피를 주기도 하였다. 선생님에게 꾸중을 들은 ‘헌 모자’ 주인은 창피한 나머지 교실을 뛰쳐나가 버리고, 친구들은 보름이 지나도록 학교에 돌아오지 않는 ‘헌 모자’ 주인을 기다린다.

이원수는 아동문학의 선구자로 동시 창작뿐만 아니라 동화와 소년소설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이원수 아동문학의 특징은 가난한 어린이의 모습을 그리지만 꿈과 소망을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의 대표작 ‘고향의 봄’은 홍난파에 의해 작곡되어 국민동요가 되었다.

그의 배우자 최순애는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하는 동요의 작사자다. 그녀는 방정환이 창간한 잡지 <어린이> 현상 공모에 동시를 응모해 입선했는데, 그 시가 바로 ‘오빠생각’이다. <어린이>를 구독하던 경상도 산골소년 이원수는 ‘오빠생각’에 반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0년 후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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