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시대가 저물었다. 지구촌 40억 명이 지켜봤다는 그의 19일 국장(國葬)은 한 시대의 종언을 새삼 각인시켜줬다. 그런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롤 모델로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와 19세기 빅토리아 여왕을 내심 꼽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좀 무리였다. 엘리자베스 1세는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실로 위대한 군주였고,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는 대영제국 최전성기가 아니던가?

엘리자베스 2세의 현실적 라이벌은 마가렛 대처 총리였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대처가 집권했던 80년대 내내 둘 모두가 영국 권력의 투 톱이었다. 한 사람은 국가의 상징(여왕)이고, 다른 이는 현실권력의 정점(총리)이 아니던가? 둘은 실제로 경쟁관계였다. 당시 대중도 ‘두 여왕’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했다. 한 살 차이인 둘은 막상 냉랭했다. 박지향 전 서울대 교수의 평전 <대처 스타일>(김영사)에 따르면, 그게 꽤 복합적이다.

표면상 둘은 뻣뻣할 이유가 없다. 일테면 대처는 왕실을 존중했고, 여왕에 깍듯한 존경심을 표했다. 여왕도 대처리즘이란 보수 철학을 체질적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성격이다. 대처는 너무 딱딱하고 공식적으로만 여왕을 대했다. 둘 사이 회동이 매번 살갑지 못했던 건 그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대처가 자꾸 여왕 흉내를 냈던 게 골치였다.

일테면 82년 포클랜드전 승전 퍼레이드 때 대처가 떡하니 군 사열에 경례를 받았다. 그건 전통적 여왕의 역할인데, 대처가 싹 무시한 것이다. 당시 대처는 "나의 군대", "나의 병사들"란 여왕식 말투를 구사해 세상을 거듭 놀라게 했다. 또 있다. 대처는 옷을 잘 입기로 유명했고, 그걸 정치에 활용했다. 문제는 90년 런던에서 열린 연회 옷차림이다. 당시 대처는 마치 스페인 무적함대 침략을 막기 위해 병사 앞에 등장했던 엘리자베스 1세 같은 치장을 했다. 벨벳 차림에 높은 깃의 망토 그리고 화려한 진주 장식 말이다.

확실히 대처는 슈퍼스타였다. 그런 대처 앞에 여왕은 눌린 듯도 보였다. 결국 대처의 은퇴 뒤에야 한 사람의 여왕만 있다는 사실에 영국이 안도했다. 유례없던 ‘제왕적 총리’ 가 퇴장한 덕분이다. 막상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대처보다 오래 살아 존재감과 함께 영국 정치의 묘미를 보여준다.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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