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00일이 넘었다. 전황은 러시아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군이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던 하르키우를 탈환하는 등 파죽지세로 남부와 동부지역에서 서울 면적의 10배에 달하는 지역을 수복하고 있다. 승리의 여신은 정의의 편에 서나?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쟁 초기 수세에 몰렸던 우크라이나군이 어떻게 파격적인 진격을 할 수 있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진영의 전략적 개입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반격작전을 수립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와 긴밀하게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조언을 받아들였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 군사정보기관에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미국과 영국은 위성영상과 통신정보 수집을 통해 러시아군의 위치와 군사동태를 정확히 파악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미국은 워게임을 통해 우크라이나 반격 작전의 실효성을 검증했고, 여러 방안 중 가장 효율적이라 판단되는 작전 계획을 확정했다. 이를 젤렌스키 대통령도 받아들임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이 대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무기 재고 등의 파악에 나섰고, 이에 따라 미국은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을 비롯한 위력적인 무기를 공급하면서 파괴력을 점증시켰다.

두 번째 이유는 서방진영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전략 무기 덕분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군 지휘부와 무기고 등을 타격하고, 탱크로 빠르게 진격하는 속도전을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제공한 사거리 80㎞의 고속기동 포병 로켓 시스템(HIMARS) 외에도 호주·캐나다·미국 등이 보내준 M777 곡사포 100문, 폴란드와 체코가 지원한 T-72M1 탱크 230대 등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항공기에서 지상으로 발사하는 공대지 미사일인 ‘고속 대(對)레이더미사일’(HARM: High-speed Anti-Radiation Missiles)이 최장 145㎞ 떨어진 곳에서 지상의 레이더파 발신지를 추적해 정밀 타격함에 따라, 대공 방어 레이더를 상시 가동해 제공권을 확보해야 하는 러시아로서는 속수무책이 됐다.

러시아군이 밀리는 세 번째 이유는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항전 의지 자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과 싸워야 할 이유가 희미하다. 아무런 이유없이 ‘특수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선에 보내졌으며,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명분조차 알지 못했다. 여기에 전쟁 초기 징집병을 투입했던 러시아는 이후 사상자가 크게 늘자 민심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용병이나 수감자를 전장에 배치했다. 그러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러시아 군인들은 전쟁이 길어지자 지쳤고, 싸울 의지도 상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군이 빠른 속도로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군을 속인 우크라이나군 지도부의 기만전술이다. 하르키우를 우선 탈환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는 남부 헤르손을 먼저 되찾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가 남부전선에 집중하도록 유도한 뒤 동부전선에서 파생공세를 펼치는 성동격서 작전이 주효했다. 여기에 러시아군의 전략적 판단 미스도 한몫을 했다. 전쟁을 현장 지휘관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모스크바에서 하는 바람에, 현장 상황에 맞게 순발력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현대전의 경우 공군력을 충분히 활용해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인데 반해, 러시아는 아직도 20-30년전의 전술 곧 포병 등의 보병을 중심으로 한 전략을 채택하다보니, 서방의 무기로 장착된 우크라이나군의 전술에 판판이 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압도적 승리로 이미 러시아 내부 여론은 악화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푸틴의 사임 요구까지 나오면서 푸틴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과연 푸틴은 어떻게 대응할까? 종전 협상 진행도 우크라이나가 반대하고 있어 어렵다.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전시동원령과 핵무기 카드다. 이 둘 모두 ‘특수군사작전’이라던 그동안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라서 푸틴이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전에서의 러시아 대패는 자존심 강한 푸틴으로 하여금 위험한 결정 즉 핵무기 사용을 만지작거리게 할 것이다. 푸틴이 21세기에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할 수 있어 세계를 주목케 하고 있다.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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