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은 반드시 우리 국군이 점령하라!”
“평양은 반드시 우리 국군이 점령하라!”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19.11.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69주년 특별기획 [19]

서울 환도식 다음날인 1950년 9월 30일 신임 미 국방장관 조지 마셜은 맥아더 장군에게 “우리는 장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함에 있어 전술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구속을 느끼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최고 기밀 전문을 보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여기에 대해“ 적이 항복하지 않는 한 그리고 적이 항복할 때까지, 나는 한반도 전역이 아군의 군사 작전을 위해 개방되 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라는 회신을 보냈습니다.

10월 7일 유엔은 미국 국무부가 제출한 미국의 제안을 47대 5로 통과시켰습니다. 미국의 제안은‘ 유엔의 목표는 한반도 전체에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반격을 시작한 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북진하면서 제1차 목표를 평양 점령에 두었습니다.

북한을 공식 국가로 인정은 안했지만 평양이 북한의 수도인 것은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국군 제1사단이 평양 탈환 작전에서 미 제1기병사단과 미 제24사단에 밀려 후방 작전 임무를 맡게 될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원래 평양 탈환 작전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프랭크 밀번 장군의 미 제 1군단이었습니다.

▲ 평양탈환작전을 지휘한 백선엽 1사단장.(자료사진)
▲ 평양탈환작전을 지휘한 백선엽 1사단장

그래서 국군 1사단장 백선엽은 밀번 군단장을 찾아가 국군이 평양 탈환 작전 공격에 선봉에 서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작전 계획을 다시 생각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한국군과 한국 국민의 정서상 적의 수도 평양 공격에 한국군이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한국군이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백선엽에게 평양은 특히 각별하였습니다. 자신의 고향이었고 당연히 대동강을 쉽게 건너는 지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밀번 장군은 백선엽의 간청을 받아들여 국군 제1사단에게 평양 공격의 임무를 맡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백선엽의 제1사단이 최초 평양 점령의 영예를 얻게 된 것입니다. 백선엽도 훗날, “월남한 내가 청년 장군이 되어 1만 5천여 한ㆍ미 장 병을 지휘하여 고향을 탈환하러 진군하는 감회를 어찌 필설로 표현 할 수 있겠는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적었습니다.

-------------------------------------------------------------------------------------------------------------------

[영어판]

“Our Troops Must First Occupy Pyeongyang”

백선엽 장군이 쓴 책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전3권이 한국전쟁 중심의 회고록이라면, 평전 『General Paik』은 인물 중심이다. 극기(克己)를 중시했던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10월 평양 탈환 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백선엽 국군 1사단장이 그를 지휘한 미 1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작전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이다. [중앙포토]
백선엽 장군이 쓴 책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전3권이 한국전쟁 중심의 회고록이라면, 평전 『General Paik』은 인물 중심이다. 극기(克己)를 중시했던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은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10월 평양 탈환 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백선엽 국군 1사단장이 그를 지휘한 미 1군단장 밀번 소장에게 작전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이다. 

The day after the return of Seoul, on September 30th, the new U.S. Secretary of Defense, George C. Marshall said in a top secret message, “We hope that as you advance past the 38th Parallel, you will not feel any constraints tactically and strategically.” Gen. MacArthur replied by saying, “As long as the enemy does not surrender, or until they surrender, I will consider the entire Korean Peninsula to be open to the military operations of the allied forces.”

On October 7th, the United Nations passed the resolution submitted by the U.S. State Department, by a 47 to 5 vote. The American resolution was one which read, “The objective of the United Nations is to proclaim to establish an independent, democratic, unified government in the entire Korean Peninsula.”

With the success of the Inchon landing as the basis for the momentum of counterattack by the South Korean and U.N. forces, their first objective as they crossed the 38th Parallel was to conquer Pyongyang. Even though North Korea was never recognized as a sovereign state, the reality was that Pyongyang was the capital city of North Korea.

평양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시청 앞에 마련된 연단에서 기념 연설을 하자 수많은 평양 시민이 광장에 몰려들어 지켜보고 있다.
평양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시청 앞에 마련된 연단에서 기념 연설을 하자 수많은 평양 시민이 광장에 몰려들어 지켜보고 있다.

However, the South Korean 1st Infantry Division was about to be pushed back by the American 1st Cavalry Division and the 24th Infantry Division, and assigned a rearguard action in the operation to take Pyongyang. Gen. Paik Sun Yeop sought out Gen. Frank W. Milburn and requested that the invasion plan be reconsidered, explaining the reasons for South Korean troops to lead the attack in the plan to capture Pyongyang.

“For the psyche of the South Korean troops and South Korean citizens, South Korean troops must not be omitted from taking of Pyongyang. Please make sure that the South Korean troops will be in the vanguard of the attack.” For Gen. Paik, taking Pyongyang was personal and special. It was his hometown, and he also knew the easy places in the Daedong River to cross over from.

As a result, Gen. Milburn heeded the request of Gen. Paik, and gave the mission of attacking Pyongyang to the South Korean 1st Infantry Division. This is how Gen. Paik Sun Yeop’s 1st Infantry Division earned the honor of being the first to take and occupy Pyongyang.

Gen. Paik recalled in later years, “I became an officer in the South Korean military after moving from the North to South Korea, and later on, commanded a South Korean and American force of 15,000 soldiers in liberating my hometown. How can I put my feelings into words? It was the most significant moment in my life.”

jayooilb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