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 20주년을 맞아 KT는 통신기업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정작 통신사업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열린 KT 민영화 20주년 기념식에서 구현모 KT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KT
민영화 20주년을 맞아 KT는 통신기업을 넘어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정작 통신사업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열린 KT 민영화 20주년 기념식에서 구현모 KT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KT

올해로 민영화 20주년을 맞이한 KT는 탈(脫)통신이란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통신을 넘어 모빌리티, 인공지능(Ai) 등 플랫폼 사업으로의 전환을 통해 경영혁신을 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KT가 이 같은 사업에 나서면서 정작 본래의 임무인 통신사업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구현모 대표를 포함해 전·현직 임원이 연루된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사건으로 검찰에 불려다니면서 모럴해저드, 다시 말해 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한 KT는 국가 기간산업이자 전략산업인 정보통신산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맡아왔다. KT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한 달여 앞둔 5월, 정부가 가진 주식 전량 8857만주(28.3%)를 매각하면서 본격 민영화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KT는 정보통신 전문가였던 이용경 전 KTF 사장을 민영화 KT의 초대 ‘조타수’로 발탁해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꿨다. 이용경 체제는 KT의 3대 요직으로 꼽히는 기획조정실장, 사업협력실장, 마케팅기획본부장 등을 모두 교체하는 강력한 개혁·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또 신임 임원 13명 가운데 12명을 40대의 젊은 피로 채워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이용경 체제 이후 KT는 달랐다. 남중수, 이석채, 황창규, 그리고 현재의 구현모 대표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며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남중수 전 대표는 인사청탁은 물론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차명계좌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로 인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 추징금 2억7000여만원을 선고받았다. 구(舊)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인 이석채 대표는 김성태 전 의원 자녀 등 유력 인사의 친인척을 부정 채용한 혐의로 올해 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반도체 분야에서 ‘황의 법칙’이란 전설까지 만들어낸 황창규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논란으로 검찰 조사를 피할 수 없었다. 황창규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상품권깡’ 방식으로 11억5000만원 상당의 비자금을 조성, 이 중 4억3800만원을 국회의원 99명에게 불법 후원한 혐의를 받았다. 다만 황창규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이 같은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논란에 구현모 대표도 연루돼 있다. 당시 명의를 빌려준 혐의를 받는 구현모 대표는 지난 1월 업무상 횡령과 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구현모 대표는 이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KT에 과징금 630만 달러를 부과했다. 지난 2014년에서 2019년까지의 행적이 해외부패방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KT는 지난 1999년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KT는 지난달 발간한 반기보고서를 통해 재무실적, 평판, 주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는 점을 들어 과징금 전액을 지급하고 2년 간 정기적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여태까지 불거진 의혹을 인정한 셈이다. 국내 기업 가운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곳은 KT가 처음이다.

민영화 20년 동안 KT는 끊임없이 ‘CEO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왔다. KT 내외부에서는 민영화 기업임에도 정치권과 밀접하게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KT의 기업 거버넌스가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정치권과의 관계를 끊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KT 이사회는 구현모 대표를 포함해 2명의 사내이사와 8명의 사외이사 등 총 10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이강철 KT지배구조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김대유 KT회장후보심사위원회 위원장, 유희열 KT 전 이사회 의장 등은 정치권 인사로 분류된다. 공교롭게도 이들 3인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시민사회수석, 경제정책수석, 과학기술부 차관을 맡았다.

지난 2018년 KT는 구현모 대표 선임 과정에서 비상설기구였던 컴플라이언스위원회(준법감시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준법 경영 실현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구현모 대표까지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며 무용지물인 모양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KT 측에 여러 차례 입장 표명을 요청했으나 답변하지 않았다.

KT는 여전히 국가기간산업을 책임지는 기업인 만큼 다른 기업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 구현모 사장의 임기가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거취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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