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 도시 ‘카라코룸’서 ‘西域정복’의 뜻을 세우다
유목민 도시 ‘카라코룸’서 ‘西域정복’의 뜻을 세우다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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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콘강변(Orkhon River)의 카라코룸유적(Qaraqorum), 이 유적에 있는 에르데니 죠-라는 대불교사원.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오르콘강변(Orkhon River)의 카라코룸유적(Qaraqorum), 이 유적에 있는 에르데니 죠-라는 대불교사원.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몽골로부터 시작된 세계사-3

◇‘초원의 길’ 서쪽으로의 출발점

지금의 몽골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꼭 한 번은 오르콘강변(Orkhon River)의 카라코룸유적(Qaraqorum)을 보러 갈 것이다. 이 유적은 몽골제국의 제2대 오고디칸(Ögedei Khan)이 1235년에 건설한 도시로 ‘초원의 길’을 서쪽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지금은 성벽과 석비의 대였던 거북형상의 돌만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그 유적 가까이에 에르데니 죠-라는 대불교사원이 있다. 이것은 16세기에 징기스칸의 자손인 아자이칸(Adai Khan, 1390년-1438년)이 세운 절이다. 타이틀을 클릭하면 전체 목차가 보입니다

이 오르콘강변은 물이 풍부한 비옥한 토지로서 몽골고원에서는 드물게 농경지다. 지금도 농원이 펼쳐져 있다. 옛날부터 유목제국들은 이곳에 몇 번이나 도시를 건설했다. 한 곳에 정주하지 않는 유목민이 왜 도시를 몇 번이나 건설했을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오르콘강변(Orkhon River)의 카라코룸유적(Qaraqorum) 성문. 이 유적은 몽골제국의 제2대 오고디칸(Ögedei Khan)이 1235년에 건설한 도시로 ‘초원의 길’을 서쪽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카라코룸(ahdrhf)=최영재 기자
오르콘강변(Orkhon River)의 카라코룸유적(Qaraqorum) 성문. 이 유적은 몽골제국의 제2대 오고디칸(Ögedei Khan)이 1235년에 건설한 도시로 ‘초원의 길’을 서쪽으로 향하는 출발점이었다.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오르콘 강변에 도시를 만든 유목민

유목민이 세력을 결집하여 유목민제국을 창립하면 군주의 주위에는 많은 군대가 집결한다. 이 군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가축이 모이게 된다. 초원이라 하더라도 풀이 드문드문 나기 때문에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농원을 개척할 필요가 있었다. 또 거두어들인 식량을 저장하기 위한 도시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오르콘(‘오르혼’으로도 발음) 강변의 땅이 중요했던 것이다.

오르콘 강변의 카라코룸 유적의 성벽.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오르콘 강변의 카라코룸 유적의 성벽.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몽골제국에 앞서, 10세기에 키타이(Khitai,契丹,거란)사람이라는 유목민이 요(遼)나라를 세워, 만주와 몽골고원을 지배했다. 이 요나라는 1003년, 오르콘강 근처에 진주건안군(鎭州建安軍)이라는 도시를 건설해서 ‘초원의 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로써 중앙아시아·서아시아와의 무역이 열려 서쪽에서 온 상인들과 함께 그리스도교도 전해졌다. 1007년에는 몽골고원의 케레이트(Kereit)부족의 왕이 20만 명을 이끌고 그리스도교에 귀의했다. 그 자손이 징기스칸이 즉위하기 전에 섬겼던 케레이트왕이다.

성벽과 석비의 대였던 거북형상의 돌, 카라코룸 유적에 있다.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성벽과 석비의 대였던 거북형상의 돌, 카라코룸 유적에 있다.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12세기가 되어 요나라는 만주의 수렵민인 쥬센(여직女直 또는 여진女眞)이 세운 금(金)나라에 멸망하고, 금나라가 만주, 내몽골, 준하까지의 중국북부를 지배했다. 이 때 몽골고원에 있던 키타이(契丹,거란)인들은 초원의 길을 서쪽으로 이동하여 카자흐스탄의 츄-강(Chu 또는 Chui) 근처에 카라키타이(Kara-Khitai,서요西遼)국을 세워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다.

◇세계정복을 그린 징기스칸의 셋째 아들

몽골제국도 역시 초원의 길을 따라갔다. 징기스칸은 1206년 즉위 후, 얼마 안 되어 금나라와 서하국(西夏,지금의 영하회족寧夏回族 자치구)에 전쟁을 걸어 굴복시켰다. 다음은 카라 키타이(서요西遼)의 뒤를 따라 초원의 길을 서쪽으로 나아갔다. 1219년부터 1225년까지 7년간의 원정으로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란고원을 정복했다.

몽골 기마전사들의 안장과 등자, 화살촉 등 각종 장비들. 카라코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몽골 기마전사들의 안장과 등자, 화살촉 등 각종 장비들. 카라코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징기스칸의 뒤를 이은 셋째 아들 오고디칸은 1234년에 금나라를 멸망시켰다. 다음해 오고디칸은 신축한 카라코룸성에 황족들과 부족장들의 대집회를 소집했다. 거기서 아버지 징

기스칸이 받은 천명에 따라 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작전계획을 결정했다. 그 작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유럽정복이었다.

징기스칸의 각 분가가 각각 장병들을 공출해서 유럽원정군이 편성되었다. 오고디칸의 맏형 죠치의 둘째 아들 바도-가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에 건설된 거대한 징기스칸 기마상.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에 건설된 거대한 징기스칸 기마상.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오고디칸 죽음 소식에 유럽 원정군 회군

원정은 1236년 볼가강(Volga River) 중류의 불가리아인의 나라(지금의 타타르스탄공화국) 정복으로부터 시작해서 더 서북쪽에 퍼져있는 루-시인의 도시를 차례차례 공격 함락시켰다. 루-시는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로서 그 이름은 러시아의 어원이지만, 그 시대에는 러시아라는 나라가 아직 없었다.

몽골군은 그다음으로 폴란드와 헝가리로 침입하여 짓밟아 버리고, 서로는 오스트리아, 남으로는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안에까지 이르렀다. 때마침 오고디칸이 죽었다는 소식이 도착했기 때문에, 원정군은 진군을 멈추고 되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유럽은 몽골제국에 정복될 운명을 모면했다.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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