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주동식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 산업화는 전반적인 자원 부족이라는 조건 위에서 추진됐다.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 부족도 문제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 즉 지식이나 기술·경험·노하우 등 지적 자산 부족은 더욱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지적 자산이 부족할 때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금이나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지적 자산이 부족한 빈틈을 메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경제개발 자금도 부족했다. 그래서 그나마 풍부한 노동력을 집중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나라 경제개발 역사는 지식과 자금의 부족을 노동력의 집중 투입으로 극복해온 역사라 할 수 있다.

지적 자산이 부족한 사회의 노동력은 부가가치가 낮은 비숙련 노동력이 대부분이다. 지식이나 기술·경험·노하우 등이 부족한 저부가가치 노동력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 먼저 경제개발과 산업화 경험을 축적해온 선진국들의 지적 자산을 수입해야 했다.

선진국들의 지적 자산을 수입해 우리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도 간단치는 않았다. 근대화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전통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앞선 경험이라 해도 한국 사회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고민과 문제 해결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만의 노하우·기술 등을 축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고유의 노하우와 기술은 ‘어떻게’(how)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수입해온 지적 자산의 내용을 의심하지 않고, 이를 어떻게 우리 현실에 적용할 것인가, 기술적 측면만 고민했다. 선진국 지적 자산의 수준과 정당성을 판단할 만한 지적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 자산의 적용이라는 기술적 측면만 고민할 경우, ‘왜’(why)라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이 사라지게 된다. ‘왜’라는 질문은 지적 자산의 존립 근거와 정당성, 궁극적인 가치에 접근한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이 없는 사회에서는 지성의 역할도 제한적이고, 발전 역시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그런 한계가 노정되고 있다. 산업계와 학계 등 지적 자산의 중요성이 큰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과거 대한민국이 저개발 국가일 때는 선진국 지적 자산을 도입해 일정한 현지 적용 과정을 거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 지적 자산을 도입해서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한국의 고민은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지적 자산이 별로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과거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의 낡은 지식을 넘겨주듯 쉽게 넘겨줄 리 없다. 지적 자산은 그들에게도 보호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능력을 갖춰야 한다. 외국 것을 베끼고 적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독창적인 개념을 새로 창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해지는 것 역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훈련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개념 설계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왜’라는 질문을 금기시한다. 독서 행태부터가 심각하다. 입시 위주 교육이다 보니 원문(full text)을 읽고 자유롭게 사유하기보다는 다이제스트를 읽고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에 집중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왜’라는 질문도 나올 수 없고, 개념 설계 능력도 갖출 수 없다. 왜소한 지성만 남는다. 우리의 경제개발과 교육 방식을 재점검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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