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수립 74주년(9·9절)을 맞이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기슭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황병서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
북한 정권수립 74주년(9·9절)을 맞이해 지난 8일 평양 만수대기슭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사진은 김정은 위원장이 황병서 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인사하는 모습. /연합

북한 김정은이 지난 2018∼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배제하고 북한-미국 간 직접 협상을 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전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자론’이라는 전략을 내세워 한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를 연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북한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셈이다.

한미클럽이 발행하는 외교·안보 전문 계간지 한미저널은 25일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4월∼2019년 8월 주고받은 친서 27통을 공개했다.

한미클럽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8년 9월 21일자 친서에서 "저는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면서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친서를 보낸 시점은 김정은이 문 전 대통령과 평양 남북정상회담(9월 19일)을 한 직후다. 당시 두 정상은 남북이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한다는 등의 합의가 담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시기 문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화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제주산 귤을 선물로 보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북한산 송이버섯 2톤을 선물하자 이에 대한 답례로 보낸 것인데 그 양이 200톤에 달했다. 김정은은 문 전 대통령이 보낸 귤을 받으면서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을 배제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그대로 고수한 것이다.

선물은 선물대로 보내면서도 대화와 협상에서는 배제됐다는 것이 알려지자 문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 발상과 시작부터가 완전한 실패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급기야는 북한 김정은조차 2019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남측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며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까지 했다.

김정은은 미국의 고위 관료들도 협상에 개입하지 않길 바랐던 걸로 보인다. 김정은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이 취소된 직후인 2018년 9월 6일자 친서에서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하자고 설득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한미클럽을 통해 "김정은은 당시 폼페이오 등 고위 관료들과의 협상에 대해 불신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의 협상에 끼어드는 것도 원치 않았다"고 분석했다. 또 "서한을 볼 때 김정은은 담판을 통해 트럼프를 설득해 입장을 관철하기를 원했고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며 친서 곳곳에서 "톱다운(하향식) 방식 협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을 지속해서 밝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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