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에 대한민국 흔적 남긴 초산 전투
압록강에 대한민국 흔적 남긴 초산 전투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19.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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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근석 중령의 회고 - 초산에서 같이 탈출했었던 중대원들과 함께 - 중대장 시절
 초산에서 같이 탈출했었던 중대원들과 함께 - 중대장 시절. (출처:서근석 중령의 회고)

초산 전투는 인천 상륙 작전 이후 북진을 계속한 국군 제2군단의 제6사단이 청천강 계곡으로 진격, 초산 지역까지 점령한 전투로 처음으로 중공군이 개입한 전투이기도 합니다. 국군 제6사단 7연대 병사들은 두 시간에 걸쳐 북한군의 반격을 물리치며 초산 남쪽 6km 지점에 있는 압록강을 향해 진격한 끝에 마침내 압록강 강변에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한지 41일 만에 얻은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압록강에 도착해 태극기를 꽂는 영광을 안은 병사들은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냈습니다. 이 때가 1950년 10월 26일 오후 2시 15분이었습니다.

초산에 진격한 국군부대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소식은 마치 통 일이 다 이루어진 것처럼 국민들을 들뜨게 했고 맥아더 장군은‘ 11월 추수 감사절이 오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감격은 짧았습니다. 국군과 유엔군의 북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1950년 10월 19일부터 이미 압록강을 건너 산속 깊이 숨어있던 중공군이 국군 6사단 7연대에 반격을 가해온 것입니다.

그때 이미 7연대는 퇴로가 차단되어 있었고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7연대는 완전히 수세에 몰렸고 7연대를 구하러 출동했던 2연대도 등 뒤에서 공격해오는 또 다른 중공군에 의해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결국 6사단은 살아남기 위해 연대별로 후퇴를 해야 했고 병사들도 각자 살길을 찾아 탈출해야 했습니다.

이들이 남쪽으로 퇴각해 모인 곳이 평안남도 개천이었습니다. 병력은 진격할 때의 절반 정도만 남아 있었습니다. 눈앞의 현실로 다가 왔던 통일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순간의 꿈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국군 6사단 장병들의 통일에의 의지와 군인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압록강에 꽂은 태극기의 감격과 함께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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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판]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고있는 국군의 모습

The Battle of Chosan was the first battle in which the Chinese communist forces engaged themselves in the war, as the South Korean 2nd Infantry Corp’s 6th Division pushed northward after the Inchon landing, pushing north into the Chungchun River, and taking the Chosan area.

The 6th Division’s 7th Regiment soldiers took two hours to repulse the North Korean army’s counterattack, and advanced towards 6 km south of Chosan towards the Yalu River, and then planted the Taeguk Flag on the shores of the Yalu River.

This momentous event happened 41 days after the offensive push began from the Nakdong River frontline. The South Korean soldiers, who arrived first on the banks of the Yalu River and planted the Taegukgi, filled their canteens with water from the Yalu River and sent them as gifts to President Rhee.

This happened at 2:15 p.m. in the afternoon on October 26, 1950. News of this development made the South Koreans elated, as if reunification had already been accomplished, and Gen. MacArthur felt that “the war shall be over before Thanksgiving Day in November.”

북진하는 유엔 연합군
1950년 10월 차례로 38선을 돌파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을 향해 직격하고 있다. 출처: http://m.blog.daum.net/bes365/4561 

However, the thrill was short-lived. On the day that the South Korean and U.N. forces’ full-fledged northward advance began on October 19, 1950, the Chinese communist forces were already hiding across the Yalu River deep in the mountains, waiting to counterattack the approaching South Korean Army’s 6th Division’s 7th Regiment.

As a result, the 6th Division, in order to survive, began to retreat by regiment, and each soldier had to find a way to escape and survive. The reunification that was literally right before their eyes, ended as a mere dream with the entry of the Chinese communist forces into the war.

However, the South Korean 6th Division soldiers’ desire for reunification and their dedication to the country as soldiers, will live on in our history along with the thrill of the Taeguk Flag being planted in the banks of the Yalu River.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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