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이 죽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② 세계적 시각에서 본 한국의 노동조합

민노총 산하 노조의 '근로손실일 수' 압도적으로 많은 건 공공연한 비밀
상세 세부내역 공개하지 않는 것은 불편한 진실 감추려는 의도 담긴 듯

현대차 노조가 지난 5월 25일 울산공장 본관 앞 잔디밭에서 ‘2022년 임금협상 승리를 위한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
현대차 노조가 지난 5월 25일 울산공장 본관 앞 잔디밭에서 ‘2022년 임금협상 승리를 위한 출정식’을 열고 있다. /연합

국가 간 비교 없이 한국의 노조, 노사관계, 노동시장의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을 알기 어렵다. OECD통계(https://stats.oecd.org/)의 노동(Labor) 항목에 임금(최저임금, 임금 격차 등), 고용 보호, 노동력(성, 연령, 산업, 시간제, 임시직 등) 관련 통계는 수십 개지만 노조 관련 통계는 단 두 개, 노조조직률과 협약적용률=단체교섭의 적용범위(Collective bargaining coverage) 뿐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국가별 연간 노동쟁의(Strikes & Lockouts=파업과 공장폐쇄) 건수, 참가인원, 총 근로손실일 수와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 수를 집계한다. 국가통계 포털(https://kosis.kr/)은 국내 노사분규 통계를 집계하는데, 규모·발생원인·시도·업종별 노사분규 건수와 총 근로손실일 수는 보여주지만,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상급단체별 통계는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근로손실일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실 노사분규는 건수보다는 근로손실일 수가 더 중요하다. 50인 노조의 파업 100건보다 1만인 노조의 파업 1건의 위력이 더 크다. 하지만 통계는 근로손실일 수의 세부내역은 보여주지 않고, 전체를 뭉뚱그려 버린다. 한국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근로손실일 수는 노사관계 안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널리 쓰이는데, 계산식은 파업 참가자수×파업시간÷1일 근로시간(8시간)이다. 그런데 원청인 현대기아차 노조가 파업하면 수많은 협력업체는 조업중단을 당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선박점거로 수만 명이 조업중단을 당하거나 현대제철 노조의 게릴라 파업으로 일부 공정(공장 또는 라인)만 멈춰도 공장 전체의 조업은 중단되는데, 이로 인한 근로손실일 수는 잡지 않는다. 요컨대 통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파업은 단체로 일손을 놓고 공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워크아웃(walkout)이고, 사용자는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파업은 대부분 사업장 안 집회(합법)를 동반하며, 공장 출입문 폐쇄(불법)도 다반사다. 그런데도 대체 인력 투입은 불가능하고, 공권력은 노조의 불법행위 진압에 극도로 몸을 사린다. 지난 5월 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현대제철 노조의 사장실 점거농성 등에 대한 입장문에서 "산업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연달아 발생하는 것은 공권력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관행 때문"이라며,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을 호소한 이유다. 가장 널리 쓰이는 국제비교 통계인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 수는 파업의 파괴력이나 노사관계의 험악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현대제철 포항공장에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들이 공장장실을 점거해 농성을 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5월 초부터 특별 격려금 400만원 지급을 요구하면서 이곳 말고도 당진제철소 사장실과 인천·순천 공장장실을 점거했다. /조선일보

한국경제연구원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한국과 G5 국가의 관련 통계를 비교했는데, 한국(41.8일)이 일본(0.2일)의 209배, 독일(4.3일)의 9.7배, 미국(6.7일)의 6.2배, 영국(19.5일)의 2.1배에 달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40일이었다. 임금 불평등도가 낮고, 사회적 연대가 잘 이뤄진다는 북유럽의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는 파업의 성격을 간과한 소치다. 북유럽국가의 노조조직률은 2019년 기준 핀란드 58.8%, 덴마크 67.0%, 노르웨이 50.4%, 스웨덴 65.2%이며, 파업의 목적과 방식은 기업 담벼락을 뛰어넘어 적용되는 산별 협약 체결을 위한 소극적인 노무 제공거부다. 한국처럼 오직 자신들만 적용받는 임금이나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연례행사처럼 하는 파업이 아닌 것이다. 10년에 1~2년 정도다. 단적으로 덴마크는 매년 근로손실일 수는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2013년은 388.2일로 평균을 껑충 올려놓았다. 핀란드, 노르웨이도 비슷하다. 외관만 보면 귤과 탱자가 비슷하고, 새끼 호랑이와 고양이가 비슷하지만 실제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 수는 노사관계의 성격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은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순위를 발표한다. 141개국을 대상으로 4대 분야, 12개 부문, 103개 항목을 평가하는데, 2019년 조사가 최신이다. 12개 부문 중에 한국은 ICT(정보통신기술) 보급과 거시경제안정성은 각각 1위, 혁신역량과 인프라(해상운송 연결성, 전력접근성 등)도 각각 6위였으나, 생산물시장은 59위, 노동시장은 51위로 가장 저조했다.

노동시장 평가의 세부 내역을 보면 내부 노동력의 이동성(Internal labor mobility) 70위, 임금 결정의 유연성 84위, 고용 및 해고관행 102위, 정리해고비용 116위,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협력이 130위였다. 경제의 세계화 내지는 국제경쟁의 보편화와 자본의 자유화로 인하여 국가 간 비교에 치열한 최고경영자(CEO)들의 주관적 평가가 오히려 한국 노조와 노사관계의 본질을 더 객관적으로 보여준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 노조와 노사관계는 망국병에 걸려있다. 이는 영국 대처 수상이 싸운 영국병보다 훨씬 심각한 중병이다. 국가의 생사·존망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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