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ㆍ달러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9.7원 오른 1,419.0원에 개장했다. /연합
2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ㆍ달러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9.7원 오른 1,419.0원에 개장했다. /연합

미국은 막대한 규모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등 쌍둥이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국채를 발행해 적자를 메워야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은 미국 정부의 이자부담을 큰 폭으로 늘려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성장 둔화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미 연준이 고강도 통화긴축에 나서고 있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여타의 경제적 고려는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초래하는 부작용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미 연준이 의도치 않았던 후폭풍이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역(逆)환율전쟁이다. 통상 환율전쟁은 세계 각국이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고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 통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가격이 내려가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역환율전쟁은 자국 통화가치를 올리려고 경쟁하는 것이다. 자국 통화가치가 너무 떨어지면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이미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자 자국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한번에 0.5~1.0%포인트까지 올리는 역환율전쟁에 나서고 있다.

역환율전쟁은 글로벌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는 동시에 재정이 약한 국가들의 연쇄 부도를 촉발할 수 있다. 국내 산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국은행이 미 연준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기업들의 재무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미 연준이 지난 21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면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3~3.25%로 우리나라의 2.5%보다 0.75%포인트 높아졌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연내 4.5%까지 올릴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면서 한미 간 금리 역전폭이 최대 1.5%포인트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한민 간 금리 역전폭이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폭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외환시장 불안,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만큼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추가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제조업 307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금리인상 영향과 기업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1.2%는 고금리로 실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어려움이 매우 많다고 답한 기업도 26.7%에 달한다.

이미 지난해 재무적인 곤란을 겪고 있는 한계기업의 숫자가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에 비해 2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연속 지속되는 기업을 뜻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기업의 외화 빚이 200조원을 웃도는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이자비용이 불어나는 것은 물론 만기 연장(롤 오버) 위험에도 직면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우리나라의 비금융기업 대외채무 합계는 1491억1070만 달러(약 210조970억원)로 지난해 말보다 38억6860만 달러 늘어났다. 이는 역대 최대치다.

무역전선도 비상이다.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이 늘면서 올해 무역수지 적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를 냈다. 이달 1~20일 무역수지는 41억 달러 적자로 6개월 연속 마이너스가 예상되고 있다. 올들어 누적 무역적자는 292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이달 들어 수출도 8.7% 감소해 심상치 않은 상태다.

‘환율 상승=수출 호재’라는 공식은 옛말이 됐다. 고환율은 원자재 수입단가 등 생산비용을 끌어올려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제고 효과를 상쇄하는 것은 물론 손실조차 초래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13일까지 500대 수출 제조기업 재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손익분기점 평균 환율은 1236원으로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훌쩍 넘어선 지금은 이미 손실구간에 접어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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