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도자’에서 ‘파수꾼’으로 :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 이정화 목사

하나님 사명 감당 위해 정치권 일 해 왔지만...전도자로 살기를 더 열망
“아이들에게 초코파이 나눠주며 전도해서 ‘초코파이 아줌마·천사’ 였죠”
“마음속엔 늘 ‘다음 세대’ 향한 시대적 근심·탄식에 밤 지새울 때 많아”

늘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묵묵히 보이지 않게 일해와
“창조질서 파괴 교육 막으려면 정치가들이 먼저 깨어나지 않으면 안 돼”
바빠도 영성 유지 위해 늘 말씀 묵상...“살아있는 말씀, 영 깊숙한 평안”

“부족한 저를 끝까지 붙들어 주신 참 좋으신 하나님은 나의 힘과 도움”

지난 22일 서울 광진구 선린교회에서 자유일보와 인터뷰한 이정화 목사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등을 막아내기 위해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지난 22일 서울 광진구 선린교회에서 자유일보와 인터뷰한 이정화 목사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등을 막아내기 위해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막지 않으면 가정과 교회가 무너지고,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명의 여자 목사’지만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등을 막아내기 위해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게 됐어요.”

‘파수꾼’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그런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선린교회에서 만난 이정화 목사(선린교회 협동목사,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는 마치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경계에서 반대세력의 파괴 행위를 막아내는 성실한 ‘하나님의 파수꾼’처럼 보였다.

그녀가 현재 맡고 있는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은 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해 현재 당에 총 54명 뿐인 직책으로,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는 등 당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 목사는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차별금지법 등을) 막아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힘 당의 역할이 실로 막중하기 때문에 열심히 함께 연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사명 감당의 수단으로 정치권 일을 해 온 그녀다. 하지만 원래는, 아니 지금도 이 목사는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자’로 살기를 더 열망한다.

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시절 매년 200명 이상은 전도했다는 이 목사의 당시 별명은 ‘초코파이 아줌마’, ‘초코파이 천사'였다. /김석구 기자
고등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시절 매년 200명 이상은 전도했다는 이 목사의 당시 별명은 ‘초코파이 아줌마’, ‘초코파이 천사'였다. /김석구 기자

“원래 브니엘 교회에서 교육전도사요, 미션스쿨인 브니엘 고등학교에서는 성경 가르시는 선생이었습니다. 매년 200명 이상을 전도해 교회로 인도했으니 기억에 남는 친구들은 많이 있습니다. 제 방 큰 캐비넷 두 개에 초코파이를 가득 채워놓고,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를 나눠주며 전도를 해서 별명이 ‘초코파이 아줌마’, ‘초코파이 천사’였어요.(웃음)”

20년간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청소년·교육을 펼쳐왔던 그녀는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엄마는 ’자기 자식보다 전도한 학생들을 더 위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감사하게도 학교에서 전도된 친구들을 교회 고등부 선생님들께서 정말 열심히 섬겨주셨어요. 약 20여 분의 교사가 한 마음 되어 영혼을 섬겼는데 여름, 겨울 수련회에 직장 휴가를 다 사용했을 정도였습니다. 참 귀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최근 2년 전까지도 서울 본교회에서 청소년부 교육목사로 줄곧 섬기다가 지금은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지만, 마음 속엔 늘 ‘다음 세대’를 향한 시대적 근심과 애태움이 있어 탄식의 영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습니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 대해서도 정정을 요청중인 이 목사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을 많이 쓰는 교과서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그녀가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시절 선거대책위 기독인지원본부장에 임명됐을 때도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기독교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도 아니거니와, 차별금지법 반대 등의 이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정치권 활동을 해 왔지만 늘 앞에 나서서 이름을 높이기보다 뒤에서 성심성의껏 지원하는 역할로 묵묵히 보이지 않게 일해왔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교육을 막으려면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정신이 먼저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석구 기자
이 목사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교육을 막으려면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정신이 먼저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석구 기자

“9년전인 2013년도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동성애 반대 활동을 하며, 보수정당 국민소통분과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이후 ‘동성애 반대 포럼’을 시작해서 전국적으로 확산을 시켰습니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 학교에서 교사로 오랫동안 일했었는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교육을 막으려면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정신이 먼저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정당에서도 활동했더니 국민의힘 기독인지원본부장으로 발표됐는데, 각 교단 총회에서는 정작 저를 잘 모르니까 ‘무명의 여목사’라며 항의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웃음)”

하나님을 위해 지금껏 열정적으로 달려온 그녀도 목회와 정치활동을 병행하는게 결코 쉽지는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 ‘영성’의 유지가 관건이다.

“생각보다 많이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어두운 현안이 너무 많고 국민의힘 당 의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안타깝기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늘 마음속에 ‘탄식의 영’이 자리 잡고 있어 더욱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시간이 줄고 있어 더욱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바쁜 가운데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구절을 늘 묵상하며, 움직일 때에도 속으로 계속 되새기며 다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5-18)는 말씀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녀는 “성격 상 깊이 생각하는 편이라,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는 편이라 자칫하면 기쁨과 기도와 감사를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에 늘 기도처럼 이 말씀을 되뇌이며 산다”며 “살아 있는 말씀이라 어느덧 영 깊숙이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분이냐고 묻자 눈을 빛내며 말한다. 

“제게 있어서 하나님은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부족한 저를 끝까지 붙들어 주시니까요.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요, 나의 도움이십니다.”

아래는 이날 자유일보와 이정화 목사와의 일문일답.

◇“남편에게 ‘나중 된 자가 먼저 됐다’는 말까지 들었죠”

-목사님은 어떻게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되셨나요.

“대학시절 전도를 받아 간혹 교회에 출석했으며, 졸업 후엔 미션스쿨 교사로서 의무적으로 예배 참석했을 뿐,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다시 사신 구주이심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역사적으로 입증된 분이시니 하나님의 존재는 부인할 수 없노라고 말하곤 했죠.

그러다 결혼 후 신앙심이 두터운 남편과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면서 어느새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와 닿았으며, 남편으로부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택하심에 감격하는 행복자가 됐죠.”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심에 감격하는 행복자가 됐다는 이정화 목사. /김석구 기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택하심에 감격하는 행복자가 됐다는 이정화 목사. /김석구 기자

-남편분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네요. 어떻게 만나셨나요.

“중매로 만났어요. 직업은 기술고등고시 출신으로, 당시 서대문에 조용기 목사님이 천막교회 하시던 시절의 신앙이 뜨거운 교인었습니다. 선 보는 자리에서 저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저는 남편이 신앙이 좋은지 모르고, 제가 미션스쿨을 다녔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확실히 믿는데 그냥 재밌게 살고 싶으니까 교회 다니는 시간이 아깝다고 대답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남편이 저를 만나기 전 기도하고 나오면서 만약에 제가 마음에 들면, ‘하나님의 존재만 부인하지 않으면 만나겠다’고 하나님께 이야기 했다는 거에요.(웃음)”

-원래 교직생활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셨나요.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했었어요. 그러다 결혼한 후 사직하고 가사 일과 육아교육에 전념했었습니다. 그렇게 6년이 흐른 뒤 교회 고등부 교사로 섬기는 중, 신학을 공부하면 좀 더 나은 섬김이 되리라 생각되어 신학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졸업 후 당시 출석하던 브니엘 교회에서 바로 교육전도사로서 사역을 시작했어요. 동시에 미션스쿨인 브니엘 고등학교 성경교사 및 종교상담실장으로 수업하며 상담과 성경공부반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리고 목사안수는 뒤늦게 2007년도에 받았어요. 교육전도사 직분으로도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는데, 당시 목표로 하던 목회대학원에 입학하려면 목사안수가 필수여서 받게 됐어요. 지내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요, 인도하심 이었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은 저를 ‘초코파이 아줌마’라 불렀죠”

-브니엘 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계실때 많은 학생들을 전도하신 것으로 압니다. 비결이 뭐였나요.

“당시 매년 200명 이상을 전도했어요. 제가 한 주에 12반을 수업을 들어갔는데요. 1학년 12개 클래스만 아직 오염이 안됐을 때 전도하려고 고집해서 1학년만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도 있어서 주일에 아이들을 다 데리고 지하철로 이동했어요. 다만,전도는 제가 했지만 이 과정에서 학교 선생님들과 협력해서 했습니다.

1학년 수업에 들어기면 3~4월에는 아이들이 제 눈을 안 마주치는데, 수업에 들어갈때마다 ‘하나님, 학생들이 오늘도 제 눈과 맞추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명찰을 보고 그 학생을 쉬는 시간에 제 방에 상담오라고 해요. 그런 뒤에 1대1로 이야기 하며 전도했던 거죠.

그렇게 매년 3~4월에만 먼저 30~40명을 제 방에 데리고 와서 전도했는데, 제 방 캐비넷 두 개를 초코파이 30만 원어치 씩 초코파이로 가득 채웠습니다. 아이들이 초코파이 먹는 재미로 무조건 상담을 왔었어요. 초코파이 더 달라고 하면 더 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뭐라고 저에게 나쁜 말을 해도 한번도 저는 마음에 요동이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간혹 심한 말을 하며 건방을 떨어도 전혀 요동치 않았어요. 학생들 중 얌전한 아이들은 저를 ‘초코파이 천사’라고 부르고, 대부분은 ‘초코파이 아줌마’라고 불렀죠.”(웃음)

이정화 목사는 교직 시절 아이들이 나쁜 말을 해도 한번도 마음에 요동이 없었다고 한다. /김석구 기자
이정화 목사는 교직 시절 아이들이 나쁜 말을 해도 한번도 마음에 요동이 없었다고 한다. /김석구 기자

-전도했던 제자들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으신가요.

“특별히 불교 학생회 회장까지 했었던 열혈한 불교신자에서 제 수업시간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교사로 학생들에게 전도하며 전도왕으로 살아가고 있는 최병호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친구니까요. 최병호 학생의 별명은 ‘리틀 전도사’ 였습니다. 

최병호 선생은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5월 스승의 날 주간에 꼭 케이크를 보내오는 귀한 제자에요. 영적 어머니라 평생 그렇게 하겠다니 마음이 짠하답니다. 이외에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친구들은 설석환, 김남훈, 하승엽, 정제헌, 조영재, 신영삼, 송수명 등등입니다.”

◇“차별금지법에 독소조항이 많기 때문에 당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대선 때 윤석열 캠프의 기독인지원본부장으로 활동하실 때 교계에 알려진 분이 아니라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주위에 여러 목사님들이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들을 만나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한번도 찾아간 적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서 했습니다. 그런 분들과 미팅하고 그런 것들이 모두 인위적인 걸로 느껴졌어요. 물론 그때 다녔다면 제 활동범위는 넓어졌겠지만요. 그 뒤로 전기총연(전국17개광역시도226개시군구기독교총연합회), 보기총(한국보수시민단체 및 전국기독교총연) 등의 단체에는 필요성이 있어 이사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가장 필요한 국가 정책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현재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6.25는 분명한 남침이다’ 이런 걸 사실대로 기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권을 주장하면서 학생들을 망치는 사례가 많은데 교권 확립도 필요해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모호한 표현도 교과서에 많이 쓰고 있는데 이런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학교에 있으면서 성경을 가르칠 때도 여학생이 화장을 진하게 하고 오면 어머니를 오시게 했는데, 오신 어머니가 오히려 항의를 하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의 인성 교육도 어렵고, 그때부터 교권이 그만큼  하락했던 거죠. 

학교에 있으면서 그런 문제점들을 너무 많이 봐 왔어요. 지금은 교회학교가 마지막 신앙의 보루입니다. 최근에 저희 교회도 이번에 ‘작은 도서관’으로 등록했는데, 저녁에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복음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정화 목사는 "지금은 교회학교가 마지막 신앙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김석구 기자
이정화 목사는 "지금은 교회학교가 마지막 신앙의 보루"라고 강조했다. /김석구 기자

-현재 국민의힘 정당에서 어떤 역할에 주력하고 계신가요.

“차별금지법에 독소조항이 많기 때문에 국민의힘 당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그래서 기독단체 및 관련된 단체들과 연합해서 국민의힘 당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우리당은 공식적인 당론은 아니지만, 차별금지법 반대쪽 의견이 많아 적극적으로 많이 도와주십니다. 제가 중간에서 다리를 많이 놓습니다. 또 최근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대한 각계 여론도 수렴하여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교회·나라 위하는게 되면 되지’라고 생각해요”

-윤석열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너무 어려운 시기에 대통령 직을 맡게 되셔서 지혜와 용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전통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되 꼭 복지가 필요한 계층에 관심과 비중을 늘려주셔서 감사합합니다. 

각 교회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시고, 기울어진 추를 다시 바르게 세워주시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직접 신앙적인 대화를 나눠보신 적도 있으신가요.

“없어요.(웃음) 저는 제가 주최한 행사에서도 항상 끝에 앉아 있어요. 윤석열 후보는 저의 역할을 잘 모를 것입니다. 저는 교단 타이틀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하도 ‘무명의 여목사’라 불려서 시험 들 뻔도 했습니다.(웃음)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기독교가 파벌이 많고 ‘이름만 내세우려고 하는게 많구나’ 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그냥 ‘실질적으로 교회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게 되면 되지’ 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자주 묵상하시는 성경 구절은 어떤 것인가요.

“오늘 제가 다니면서 품었던 말씀이 (삼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였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무겁고 비중있게 둬야 하는데, 실제로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 의미를 계속 묵상해 봤어요.

​이 목사는 "하나님 앞에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볼 때 몸부림을 많이 친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하나님 앞에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볼 때 몸부림을 많이 친다"고 말했다.

지난 선거활동 때 제 딸이 어떤 한 의원님과 티타임을 가지면서 ‘우리 엄마는 자식과 손자보다 나라가 먼저에요’라고 했다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제가 혹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역이 먼저가 되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것 아닌가’ 하는 깊은 찔림이 왔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하나님께 먼저 마음이 온전히 가고 나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되는데, 어느덧 제가 사역만 강하게 돼 버리니까 마음이 몸부림을 치게 되더라구요. 온통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될 때 자꾸 탄식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 앞에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을 볼 때 몸부림을 많이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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