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정부가 비판받을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일본’이라는 무기를 꺼낸다. 한일 과거사를 파내 국민의 마음을 돌리고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일본을 이용하는 것 같다. 한국인 애국심도 키워주고, 대통령 지지율도 올려주니, 일본은 일석이조의 존재인 듯하다. 처음에는 일본에 관한 어두운 뉴스를 보면 기분이 침울했지만, 지금은 한국을 위해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하며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원래 정치와 경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온 지 29년 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이다. 일본이 수출관리우대조치 대상국에서 한국을 제외했으니 먼저 시비를 걸었다며 일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위안부, 징용공 등 과거를 끄집어내고 GSOMIA 파기까지. 가지가지 해서 한숨이 나온다. 한국에 사는 일본인과 일본에 사는 한국인의 마음을 정부는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마음이 편해지려나 하면 희망을 빼앗아간다.

한국 생활 29년 동안 역사의 무게를 느꼈다. 세계를 둘러봐도 이웃 나라끼리 친하다는 나라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한일관계가 안 좋은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는 한일관계의 고정관념은 깰 수 없는 걸까? 일본에 ‘親しき仲にも禮儀あり’라는 속담이 있다. 친한 사이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일은 가까이 있어도 친하지 않으니 예의까지 못 지키는 건가.

그러면 예의나 친교는 둘째치고 우선 "가까우니 싸우지 말자"부터 시작할 수 없을까? 나는 일본에서 산 세월보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다. 그래서 한일의 장단점, 문화 차이를 잘 파악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아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갖게 되는 이 바람은 너무 큰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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