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기
홍성기

"윤리적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사실을 부정하고 믿고 싶은 바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진실 추구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중략) 정확성은 신속성에 우선한다. 모든 정보를 성실하게 검증하고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보도한다. 취재원 발언을 정확히 인용하며 발언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한다. (중략) 의도와 기술방식이 진실을 가리지 않도록 양심에 따라 보도한다."

한국기자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의 첫 번째 조항 ‘진실을 추구한다’의 주요 내용이다. 이번 MBC 등 상당수 언론이 보도한 ‘대통령의 비속어 및 미국 의회와 대통령 모욕 발언’ 기사는 위에 인용된 윤리강령의 주요 내용을 모두 어겼다.

자막을 써서 시청자를 호도했다는 비판이 일자, KBS 등은 잡음을 제거한 후 시청자들에게 직접 판단해 보라는 식의 후속 보도를 했다. 필자가 들어보니 처음에는 들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천천히 여러 번 들으니 문제의 비속어가 들리기도 하고 ‘바이든’도 ‘날리면’도 들렸다. 음성전문가에 의하면, 잡음 제거 과정에서 소리의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비속어가 들리지 않는다는 등, 이런 상태라면 ‘판독불가’가 가장 객관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이 방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의 사적 대화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설령 방송을 하더라도 "발언 취지가 왜곡되지 않도록" 대통령실과 박진 장관에게 방송 내용을 사전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통령실과 박진 장관은 언론의 보도 내용이 왜곡됐다고 밝혔고, 그 해명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내용을 확인할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는, 당사자의 해명을 부정하는 어떤 의견도 추측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는 여당 전 의원의 발언은 ‘거짓말보다 더 나쁜 게 근거 없는 비난’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당수 언론은 왜, 스스로 제정한 "기술방식이 진실을 가리지 않도록 보도한다"는 원칙을 어기며 이런 무책임한 방송을 내보냈을까? 그 이유는 이들이 윤석열 정부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방송이 나가기 전 이미 민주당 당직자가 그 내용을 알고 발표했다는 점에서도 짐작된다. 민주당은 이 동영상을 SNS로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풀기자단이 촬영한 영상이 보도 이전에 누출됐다는 점에서,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는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을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자막 왜곡은 가짜뉴스의 첫걸음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한 MBC ‘PD수첩’이 본보기다. 인간광우병을 의심받고는 있지만 확진되지 않은 흑인 여성에 대해 ‘인간광우병에 걸렸다’는 오역 자막을 내보냈다. 2014년 여수 기름누출사고 현장을 방문한 윤진숙 당시 해수부장관이 독감에 걸려 기침하는 장면 사진에는, ‘기름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는’ 것으로 오독될 수 있는 캡션을 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방송사고의 정치적 효과는 언론이나 야당의 기대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왜곡의 수준이 너무 낮다. 국민도 왜곡언론에 어느 정도 면역력을 갖고 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담론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었던 태블릿 PC 보도를 한 방송사 기자는 상을 받았다. 한참 후 검찰은 그 소유자가 대통령 측근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처럼 ‘가짜 뉴스 권하는 사회’는 궁극적으로 언론인을 진실의 추적자가 아니라 정치라는 게임의 병졸이나 기술자로 만들게 된다. 한국기자협회가 스스로 제정한 윤리강령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