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이 본죽 대표 “영혼 잘 되는 표시, 돈 많아지는 게 아닌 평안·기쁨”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에 전도지도 돌리고 주일학교 아이들도 가르쳐”
“손님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보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알게 돼”
“하나님 바라보고 그분 이끄심 순종하며 살아가니까 여기까지 온 것”

25일 새샘교회 창립 16주년 초청간증집회에서 간증 중인 최복이 본죽 대표. /유튜브 영상 캡처
25일 새샘교회 창립 16주년 초청간증집회에서 간증 중인 최복이 본죽 대표. /유튜브 영상 캡처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게 복입니다. 기도, 말씀, 찬양이 예배 안에 다 들어 있어요. 예배 한번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 내 것을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그 시간에 축복을 내려주셔서 나의 부족함을 고쳐주시고 지혜롭게 만들어주시고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또 평안과 기쁨을 주시고 영혼이 잘 되니까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만들어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그 시간 예배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게 인생의 최고의 복이고 복 있는 삶으로 가는 길이에요.”

지난 25일 새샘교회(담임목사 권오광) 창립 16주년 초청간증집회에서‘복 있는 삶으로의 초대’(시73:28)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전한 최복이 본죽 대표는 이같이 강조했다. 최 대표는 이날 “허접했던 제가 이렇게 하나님을 증거하는 인생으로 바뀌었다. 또 천국 티켓도 가지고 있으니까 오늘 죽어도 상관없다”며 “사는 날 동안은 하나님 붙잡고 축복받고, 나만 복 받는 게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어렵고 힘없는 사람을 돕고 선교사님들을 섬기고 아픈 분들을 치유하고 장학금을 주고 신나는 인생이 된 건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 가까이 붙어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하신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과 함께 결혼을 하게 되어 가난한 형편에 아기를 업고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는 최 대표는 갈 곳이 없어 시집 쪽으로 돈을 꾸러 갔다가 일평생의 기도제목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 어린 게 벌써 돈을 꾸러 다닌다고 인생 망치니까 보내 버리라는 말이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비참해서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며 “그때 죽을 때까지 돈을 꾸러 다니지 않고, 사람을 찾아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어 “가장 최고의 복은 하나님 자녀 되는 복이다. 이미 자녀가 됐는데 자녀로서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 것이다.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있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날 축복을 주시면 평생 베풀고 섬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기도제목이 생겼다”고 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에 전도지 열심히 돌리고 주일학교 아이들 가르쳐”

남편이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고 최 대표는 아이를 업고 갈 데가 없어 집 근처 조그만 교회를 찾아갔다고 한다. 거기서 기도하다가 목사님, 사모님과 친해져 같이 전도도 하고 예배드리고, 기도원을 따라다니며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다. 최 대표는 “먹고 살 길은 없어 막막하고 오갈 데도 없고 마음 둘 데도 없어 절박해서 찾아갔는데 그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계속 살아계신 하나님을 말씀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친정아버지 부르듯 부르시는 걸 봤다. 그만큼 하나님과 가깝고 친밀했던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는데 지금은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이 됐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다고 나온다. 내가 마음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줄 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이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금요철야에 기도한 다음 날 새벽 혼자 한적한 곳에 나가서 기도하는데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기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죄악이 많은 사람인지 십자가가 제 죄를 해결해주는 얼마나 기가 막힌 사랑이고 은혜인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살아계셨다”며 “저는 남들 있는 데서는 큰 소리로 기도도 못 했던 사람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제 성품을 다 아시고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몰래 만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게 더 감격이 되었다. 그때부터 제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 우울했던 상황이 바뀐 게 아니다. 그런데 기쁨과 평안함을 느끼고 걱정이 다 없어지는 걸 경험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전도지도 더 열심히 돌리고 주일학교 아이들도 가르치고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했다.

◇“손님이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보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알게 돼”

“성경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고 구하는 사이에 하나님과 친해진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고 있었어요. 영혼이 잘 되는 표시는 돈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평안하고 기쁜 것입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평안과 기쁨의 선물이 먼저 온 것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뀌었더니 남편의 사업이 잘 돼서 부자가 됐어요.”

그러던 최 대표는 다니던 교회를 떠나 강남으로 이사를 간 후 교회를 잘 안 다니게 됐다. ‘한 번 부자는 영원한 부자’일 줄 알았던 그녀는 교회도 안 나가고 봉사도 안 하고, 백화점을 다니며 아이들 학원 좋은 데 보내는 강남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하나님 사랑은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 번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원히 사랑하는 줄 착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IMF가 터졌고, 모든 것이 날아가는 데 몇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파산에 파산을 하고 동반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물질 뿐 아니라 건강 파산, 관계의 파산이 일어났다.

“시어머니는 가질 걸 다 처분해서 저희에게 합류하셨어요. 어머니의 인생까지 다 초토화시켰는데 오셔서 전혀 혼내지 않으시고 새벽기도를 다니시면서 빈 병, 폐지를 주우셨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분이라 고난 앞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셨어요. 어머니는 저에게 하나님 자녀는 안 망한다고, 젊어서 고생을 사서도 하는 것이고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하나님은 고난도 필요할 때 주시는 거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머니를 고생시킬 수 없었던 최 대표는 숙명여대 앞에서 호떡 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하며 500원 짜리 호떡 하나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손님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걸 보면서, 그때 인생 생사화복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하나님 바라보고 이끄심 순종하면서 살아가니까 여기까지 온 것”

이후 식당 컨설팅을 하는 남편 친구 회사에 남편과 함께 취업한 최 대표는 요리학원에서 설거지와 바닥 청소, 뒷정리를 병행했다. 당시 상황을 “매일 죽고 싶었고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다”고 회상하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반전을 일으키셨다. 2년 정도 지나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남편이 식당 컨설팅을 하면서 지혜로 저에게 죽집을 해보라고 한 것. 이것이 결국 하나님이 주신 지혜였다.

“회사에서 쫓겨난 게 저한테는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고, 진짜 축복은 망한 것입니다. 멀리 갈 뻔했는데 망해서 하나님께 돌아왔거든요. 돌아와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무릎 경영을 시작한 것이죠. 호떡 장사하고 설거지한 것 같지만 호떡장사를 하며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걸 배웠습니다. 또 돈이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배워 하나님 앞에 겸손해졌습니다.”

최 대표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결국 요리학원에서 제대로 요리하는 걸 다 배웠다. 요리가 손맛이 아니라 표준화, 계량화하는 것과 재료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관리하는지를 다 배운 것”이라며 “하나님이 저를 축복해 주셨는데 제가 잘 못해서 실수하고 넘어져서 다 망해버렸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니 앞앞에 다시 가니까 하나님이 기회를 또 주시는 거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면 더 큰 기회를 또 주신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떡 장사를 하고 설거지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버린 게 아니셨다. 저는 버림받은 줄 알았다. 저를 고치시고 새롭게 빚으시고 다음 축복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본죽을 탄생하게 만드셨다”며 “본죽은 내가 먹고살기 위해 만들었지만, 축복의 그릇도 되고 사명의 그릇도 됐다. 죽 한 그릇이 가난한 사람을 섬기는 도구가 되고 선교사님을 섬기는 도구가 되는 데까지 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녀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하면 때로는 징계하신다. 그런데 끝까지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기회를 또 주신다”며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 만드신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아름다운 도구로 쓰시는 것을 저에게 드러내게 하셨다”고 했다.

이어 “대학로 1호점에서 9그릇, 12그릇을 팔며 돈이 많이 쌓이지 않았는데도 노숙자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 먼저 감사하고 먼저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모든 축복이 하나님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라며 “그렇게 노숙자에게 밥을 주는 봉사하고 선교사님들 오시라고 해서 죽을 먹이고 죽을 싸서 보내드리던 게 지금 본사랑재단 구제재단이 되고, 본월드 미션 선교재단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개의 브랜드와 여러 회사가 세워져서 여기까지 오고 있다”고 했다.

끝으로 “저희는 한 게 없다.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 제가 한 일은 하나님께 붙어 있던 것뿐”이라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니까 큰일 날 뻔했다.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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