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우리의 삶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스마트폰과 TV, 자동차의 음성비서부터 포털 검색엔진, 주식매매에 이르기까지 AI의 도움 없이 하루를 보내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AI가 최근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마지막 성역으로 여겨졌던 문화·예술의 영역에 속속 진출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화두를 던지고 있다. AI의 작품을 창의성의 산물로 볼 것인지, 인간의 창작물과 마찬가지로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인간의 창의성에 도전=메타는 지난달 30일 AI 기반 영상 제작 프로그램 ‘메이크 어 비디오(Make-A-Video)’를 공개했다. 사용자가 텍스트를 입력하면 AI가 이를 짧은 영상클립으로 만들어주는 텍스트 투 비디오(text-to-vedeo) 생성기다.
이를 이용하면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했던 ‘빌딩 숲을 유영하는 대왕고래’처럼 비현실적 영상도 뚝딱 얻을 수 있다. 실제 이날 메타가 공개한 영상에는 ‘하늘을 나는 슈퍼히어로 복장의 개’, ‘자화상을 그리는 테디베어’, ‘타임스퀘어에서 춤추는 로봇’, ‘리모컨을 쥐고 TV를 보는 고양이’ 등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 시스템의 개발을 위해 메타는 텍스트 설명이 달린 23억개 이상의 이미지와 수백만개의 비디오를 이용해 AI를 교육했다. 아직 5초짜리 저해상도(64×64픽셀) 영상을 생성하는 수준이지만 기존 비디오 생성기가 여러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단순 편집해 이른바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파일을 만들었던 반면 메이크 어 비디오는 텍스트 명령만으로 영상을 창작해낸다는 점에서 미래 영상 제작의 획기적 진보를 이끌 기술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맞물려 창조의 영역에서 AI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논쟁에 불을 붙였다. AI가 만든 글과 음악·그림·영상에 대한 저작권 문제다.
◇창작자 vs 카피캣=법제도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쫓아가지 못한 대다수 사안에서 그렇듯 이 또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AI의 작품은 엄연한 창작물이며 저작권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가치 있는 콘텐츠의 생산을 촉진해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문화·예술 종사자들도 AI와의 협업이 새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긍정적 입장을 견지한다. 한국 대표 만화가인 이현세 씨는 지난 1일 만화용 자료사진을 ‘이현세 그림체’로 전환하는 AI 프로젝트에 착수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신의 그림체와 세계관을 발전시킨 작품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들은 AI는 창작자가 아닌 ‘카피캣’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기술적으로 AI는 인간의 저작물 데이터 세트를 학습한 뒤 조금씩 모방해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저작권을 부여하면 원본 저작물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꼴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의 유명 AI 연구자 사이먼 윌리슨과 앤디 바이오가 메이크 어 비디오의 AI 학습에 활용된 데이터 세트를 조사한 결과, 이미지·영상 판매사이트 ‘셔터스톡’에 등재된 1000만개 이상의 영상이 무단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튜브 영상도 330만개나 쓰였다. 현 상황에선 AI가 자칫 문화·예술 저작권의 세탁기로 악용될 소지가 큰 것이다.
◇저작권 세탁기=이에 세계 각국은 아직 AI의 작품에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의 창작물만 저작권의 대상으로 본다. 미 저작권청은 올 2월 이를 근거로 AI가 만든 ‘파라다이스로 가는 최근 입구’라는 그림에 대한 저작권 신청을 불허한 바 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역시 저작물은 인간의 창작물, 저작자는 인간으로 한정하고 있다.
다만 최근들어 조금씩 전향적인 기류가 감지된다. 예컨데 지난 8월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에선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로 생성한 그림 ‘우주 오페라 극장’이 디지털아트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달 크리스 카시타노바라는 작가는 미드저니로 그린 18쪽짜리 만화 ‘새벽의 자르야’가 미 저작권청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림은 AI가 그렸지만 스토리를 구성하고 대사를 쓰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작가의 창작성을 인정한 결정으로 보인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AI를 저작권자로 인정하거나 100% AI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 보호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인간처럼 사고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는 고도의 AI 등장에 대비해 지금부터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임에는 틀림없다"고 말했다.
- 기자명 양철승 기자
- 입력 2022.10.04 10:59
- 수정 2022.10.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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