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마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 발표를 마친 뒤 당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

김건희 대표는 신데렐라가 아니라 평강공주였다.

김건희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민주당과 이재명 측이 퍼뜨린 거짓선동, 마타도어를 믿기 때문이다. 즉, 얼토당토 않은 유흥주점 접대부설과 허위경력 날조설을 그대로 믿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김건희 대표가 술집에 근무한 적이 없고, 경력을 조금씩 부풀리기는 했어도, 실제로는 굉장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후자가 김건희 대표를 싫어하는 이유로는 "잘나가는 검사 윤석열 만나서 팔자고쳤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얼굴도 미인에, 검사 남편 만나서 신데렐라가 된 김건희 대표가 ‘짜증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 질투심리는 40대 주부층에서 광범하게 퍼져있다. 40대 주부층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가 가장 낮은 이유도, ‘신데렐라 김건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일까? 김건희 대표가 윤석열 후보와 결혼하고, 여기까지 왔던 삶이 ‘젊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신데렐라’였기 때문일까?

필자는 오히려 그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지난번에 본지에 기고했듯이 김건희 대표는 무모하리만치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스타일이지, 다른 사람의 삶에 업혀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무대 아래에 있으면서 무대에 설 다른 사람을 꾸며주고, 그가 빛나도록하는 것이다. 전시기획자라는 직업이 그런 것 아닌가?

마치 연극이나 영화에서 배우가 빛나도록 꾸며주는 스텝진처럼, 전시된 미술품이 빛을 발하도록 꾸며주는 것, 그것이 바로 전시기획자의 직업의식인 것이다.

검사 윤석열과의 만남과 결혼 생활에서도 그런 모습이었던 것 같다.

즉, 결혼 당시 윤석열은 의협심만 강했지, 나이들고 고집스런 모습 때문에 출세도 못하고 지방으로 전전하는 시골검사에 불과했다. 거기에 가진 돈이라고는 몇 천 만원밖에 없는 검사였다.

반면, 김건희 대표는 부유한 집안에 잘 나가는 전시기획자였다. 거기에 얼굴까지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김건희 대표가 지방 검사 윤석열을 선택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김건희 대표는 검사 윤석열을 선택했다. 윤석열 후보의 대학 동기였던 지인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윤석열이 결혼을 못할 줄 알았다."

그만큼 나이들고 친구와 술 좋아하는, 그러면서도 돈은 없는 시골검사 윤석열이 ‘돈많고 젊은 미인 김건희’를 만나 결혼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그 둘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윤석열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로 인해 잠시 지방으로 좌천되기는 했지만, 얼마되지 않아 다시 회복되었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의 꽃인 서울지검장에 오르고, 몇 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까지 올라섰다.

조국사태는 승승장구한 윤석열에게는 엄청난 전환점이었다. 주변의 인맥관계와 사회의 공정, 정의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현장에 서게 되었다.

검창총장 윤석열은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선택했다. 주변관계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정하게 처리해 나갔다. 그것에 대해 그녀는 "주변관계를 걱정했다면 만류했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믿었기 때문에 소신껏 해나가길 바랬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입문과 대선출마.

사실 정치활동을 좌우하는 것은 겉으로는 명분이고, 속으로는 돈이다. 고건총리나 반기문 총장이 중도 사퇴한 배경에는 ‘돈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는 정치에 입문하고 대선후보에 올라섰다. 고건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총장처럼 낙마하지 않았다. 만약, 김건희 대표의 재산이 뒷바침되지 않았다면, 과연 윤석열의 배짱 베팅이 가능했을까?

아마, 대선후보는 커녕 정치입문 자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나이든 시골검사 윤석열 후보가 일약 제1야당의 대선후보, 그것도 당선가능성이 제일 높은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김건희 대표의 뒷바침은 절대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이라는 왕자에게 선택받은 신데렐라 김건희가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시골검사를 대선후보의 반열에 올려세운 것은 ‘평강공주 김건희’였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김건희 대표 외에도 조국과 추미애의 어이없는 행패에 분노한 국민들이 윤석열 후보를 불러낸 것이지만, 그럼에도 김건희 대표의 뒷바침은 작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지금도 김건희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감당해야할 민주당과 이재명측의 검증공세와 비난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받을 비난을 혼자서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과 이재명측에서 윤석열 후보에 대해 공격할 재료가 별로 없다보니, 윤석열 후보의 약한 고리로 김건희 대표를 찍고 공격하는 것이다.

온갖 거짓 선동으로 실제의 김건희와는 전혀 다른 ‘도깨비 김건희’가 만들어지고 있다.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고, 또 남편인 윤석열 후보가 성공하는 데 뒷바침이 되었던 한 여성의 인생이 한 순간에 매도 당하고 있다.

김성회
김성회

 

그런데, 과연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기 때문에 뭇사람에게 난도질을 당할 이유가 있을까?

비난보다는 김건희 대표가 어떻게 살아왔고, 전시기획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무엇일까를 보아주는 것이 우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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