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향년 94세. 그의 죽음은 세대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민적 애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고인이 1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우리 현대사에서 남긴 족적이 크고 인상적이었다는 방증이다.

김동길 교수는 우리 현대사에서 영미권 사회의 젠틀맨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다. 다양한 영역에 걸친 풍부한 학식과 교양은 말할 것도 없다. 엄혹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불의를 과감하게 비판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실천에도 앞장섰다.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은 그런 위상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는 또 지금은 무척 희귀해진, 종합 인문학적 교양을 갖춘 지식인이었다. 그 풍부한 교양에서 함부로 흉내내기 힘든 논리와 유머가 솟아나왔다. 고인은 다양한 언론매체에 칼럼과 에세이 등을 집필하는 한편 80세가 넘은 나이에 시사 프로그램에 최고령 패널로 출연했다. 정확한 언변, 정연한 논리와 유머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진보 진영의 일원으로 사회적 발언을 시작했지만, 결코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다. ‘3김은 정치 그만두고 낚시나 하라’는 40대 역할론이나, 강경대 군 사망 사건 이후 "그를 열사라고 부르지 마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스스로 학교를 떠났던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던 진보 진영 지식인들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좌파의 충성스러운 스피커로 전락하는 사례는 너무 많다. 그런 지적 풍토에서 김동길 교수의 행보는 소신을 지키는 지식인의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종북 세력에 대해 "백성을 이끌고 섶을 지고 불로 가는 사람들"이라며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생존에 관한 문제"라고 경고한 것은, 그 현재적 의미가 더욱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는 평안남도에서 태어났다. 자유를 찾아 내려온 월남민이다. 우리나라 건국과 경제 개발에서 월남민들이 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동길 교수의 죽음은 그 세대의 퇴장을 알리는 마지막 이벤트일 수 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고 이제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역사적 과제를 위해 나아가야 할 상황이다. 김동길 교수의 별세를 보며 그것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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