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예 퇴임사 (上)] "담임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어떤 명예 퇴임사 (上)] "담임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 최성재
  • 승인 2017.12.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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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명예 퇴임사(上)

방금 끝난 이00 선생님의 정년 퇴임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절절히 와 닿습니다. 부럽습니다. 저는 고작 1년 6개월을 못다 채우고 건강 문제로 부끄럽게 퇴임합니다. 건강관리도 90% 이상 본인 책임이라고 볼 때,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부끄러운 자리에서 뻔뻔하게 작별 인사를 고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퇴임식이 있다는 걸 집사람에게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이란 집에서 대장이란 뜻이랍니다.)

하여간 이렇게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무회의 형식으로, 의무적으로 ≪스승의 노래≫를 부를 학생 한 명 없이, ≪억지 춘향≫이 아닌 척하며 다투어 꽃 달아 줄 초대 손님 한 명 없이, 우리끼리 오붓하고 뜻 깊게 석별의 정을 나누는 형식으로 퇴임식이 거행되는 게 아닐 거라고 했다면, 저는 오늘 숫제 얼굴을 내밀지 않았을 겁니다.

여느 교무회의와는 판이하게 한 분도 빠짐없이 다 오신 것 같아 더욱 감사합니다. 이00 선생님과 제가 교장․교감 선생님보다 인기 있나 봅니다, 하하! 어떻게 알았는지, 이00 선생님이랑 저랑 다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 한 분, 저기 꽃다발을 두 개 들고 앉아 계시네요. 조00 공주님, 감사합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해 아쉽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합니다. 저는 입대한 지 7개월 만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반쪽짜리 인간이라고 원주국군통합병원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후 대학 3학년 때는 결핵을 앓아 2년간 휴학했습니다.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간신히 교단에 설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해 월세도 못 얻을 220만 원만 들고 장가를 잘 가서 입원 한 번 않고 20여년 즐겁게,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아들, 딸, 딸, 이렇게 3명을 키우며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집사람이 550만 원을 갖고 왔습니다.)

몸무게도 54kg에서 결혼 20년 만에 60kg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신장암으로 1차 위기를 맞았습니다. 다행히 치료가 잘되어 병가 2개월 후 무사히 복직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괜찮나 했는데, 시랑고랑 일흔 살은 넘기는가 싶었는데, 7년 만에 췌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수술은 잘되었지만, 종양을 못다 제거해 항암치료를 2년간 받았습니다. 2년 연속 병가도 냈고 연가도 몽땅 썼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애틋한 마음과 따뜻한 눈길로 도와 주셔서 꽤 호전되었지만, 아직 케모(chemotherapy)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속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아,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봅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의 최고 명품은 담임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담임을 맡으면 일이 두 배로 늘어납니다. 달랑 13만 원 더 받고 매달 전국의 담임들이 국가에 최소한 130만 원씩 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정년퇴임 때까지 담임을 맡을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담임으로서 학생들에게 베풀고 싶은 사랑이 여전히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I am still hungry! 지난 2년간 치료 받느라 담임을 못해서 못내 아쉽습니다.

저는 담임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교장․교감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부장도 제 역량을 벗어난다고 보아서 한 번도 맡지 않았습니다. 학년 부장하면 둘 다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나 해당되지 저같이 능력이 한참 딸리는 사람한테는 너무 과분한 직책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담임으로서 겪었던 애환 몇 개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학생 등교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합니다. (집사람이 지금쯤, 2월인데도 저희가 결혼한 5월이나 되는 듯, 나비처럼 사뿐사뿐 날아다닐 겁니다. 아침잠이 유난히 많은 미인이 내일부터 마음 놓고 늦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요.)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가서 있는 대로 불을 켭니다. 계절에 관계없이 창문도 남김없이 활짝 엽니다. 그리고는 교무실에 내려가서 30분 정도 책을 보다가 교실에 들어갑니다. 한두 명 앉아 있거나 저 혼자 기다리거나 그렇습니다. 인사만 건네고 교탁 옆에 여분으로 둔 학생용 책상에 앉아 독서하거나 교재 연구합니다.

저는 조회와 종례는 꼭 하지만 훈화는 일주일에 딱 한 번만 합니다. 전달사항은 유인물을 나눠주거나 칠판 한쪽 구석에 쓰는 걸로 끝입니다.

첫 대면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은 살짝 손을 들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손든 학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요새같이 못된 학생이 득실거리는 세상에 착한 학생으로만 구성된 반을 맡게 된 건 세상에 복도, 복도, 이런 복도 없습니다. 만약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오늘부터 공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학생은 하루 종일 잠만 자도 그냥 내버려두겠습니다. 나쁜 사람이 공부를 못하면 기껏해야 제 주변의 몇 명에게 폐를 끼칠 따름이지만, 그런 자가 공부를 잘하면 수만 명, 수십만 명에게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공부 잘하는 악인(惡人)은 사회의 암이요, 국가의 재앙입니다.”

이어서 저는 학생들에게 1년간 지킬 것을 딱 두 가지만 얘기합니다. 첫째 출석, 둘째 청소! 요새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바로 고개를 외로 꼽니다. <출석은 성실, 청소는 봉사>를 뜻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면, 즉시 학생들의 눈이 별처럼 초롱초롱해집니다. 청소는 두 명씩 담당하게 합니다. 그러면 책임회피를 못합니다. 청소 후 반드시 제게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학생을 믿고 청소하는 건 일부러 지켜보지 않습니다. 깜박 집에 가다가 불려온 학생도 더러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 반은 언제나 깨끗합니다.

복장이라든가 머리모양이라든가 이런 건 일체 간섭하지 않습니다. 2500년 전 싯다르타가 왕자 시절에 얼마나 무거운 귀고리를 두 귀에 주렁주렁 달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보리수 아래에서 석가모니로 거듭난 후에도 두 귀가 축 늘어졌다고 하면서, 나 자신이 옷을 제대로 입을 줄도 모르고 머리 손질할 줄은 더군다나 모르는데, 미적 감각이 뛰어난 요새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하겠느냐고 하면,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어오릅니다.

단 학생부 선생님이나 딴 선생님에게 적발되면, 그건 담임의 영역 밖이라고 땅땅 대못을 박습니다. 그러면 배시시 웃다가 일제히 숙연해집니다.

자기 소개서를 나눠 주면서 내일까지 제출하되, 반드시 자신의 장점 5개와 단점 1개를 써 오라고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면담합니다. 한 명당 면담 시간은 최소한 30분입니다.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면담합니다. 3학년은 기본이 3번입니다. 이게 실은 제일 힘듭니다만, 그만큼 보람도 제일 큽니다. 남녀 학생 불문하고 면담하면서 숱하게 울렸습니다. 때로는 저도 괜히 천장을 치올려보며 눈을 깜작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관심과 꼬박꼬박 부르는 출석 점호 때문인지,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일주일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제 반 학생 이름을 죄다 욉니다.

학과 수업만 들어가더라도 학생들 이름을 한두 달이면 거의 다 외어서 학생을 부를 때는 ‘어이, 야,’ 하지 않고 꼭 이름을 불러 줍니다. 깜박 잊어 버렸으면 교무실에 들어가서 바로 확인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책 없이 말썽을 피우는 학생도 저한테는 함부로 굴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는 농담도 곧잘 받아 주니까요. 수업시간에도 잘 웃깁니다. 가끔 제가 너무 흥분하여 침을 튀기는 바람에 앞에 앉은 학생들이 몸을 뒤로 쭉 빼며 마구 손을 내젓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제가 미리 경고의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경상도 시골 양반, 침 튀긴다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또 그러네!”

우리 반은 뭐든 제출하는 게 늘 일등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제출하게 만드니까요. 학부모 서명란은 학생에게 멋있게 그리게 합니다. 가짜? 저는 고등학생이면 지성인이자, 교양인이자, 자유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부모의 서명이 필요 없다고 봅니다.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각하면 팔굽혀펴기로 체력을 단련시킵니다. 여학생은 20회, 남학생은 50회, 담임도 남자니까 50회,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니까요. 딱 한 번 출근길에 자가용이 펑크 나는 바람에 제가 5분 늦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팔굽혀펴기를 실시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학생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결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글은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 필자 최성재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전 영어교사

문화·교육평론가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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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 2017-12-13 01:31:19
어린시절 보았던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의 키팅 선생님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요? 저 아이들의 심장 한켠에 인생의 지표가 될 촛불 하나씩 가지고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참된 가르침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공부 잘하는 악인이 매스컴에 회자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더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먹먹한 마음 안고, 좋은 배움 얻어갑니다.

정수현 2017-12-13 00:38:58
감동입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