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대멸종을 촉발한 소행성 충돌이 2004년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규모 9.1 지진의 5만배에 달하는 초대형 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66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떨어지며 공룡을 멸종시킨 직경 10㎞급 소행성이 초대형 쓰나미에 더해 최대 수개월간 지속된 초거대 지진을 일으켰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당시 지구를 지배했던 동식물의 75%가 일거에 절멸한 것도 이 같은 쓰나미와 지진의 콤보 공격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몽클레어주립대학 지질학부의 헤르만 베르무데스 박사과정생은 최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미국지질학회(GSA) 회의에서 공룡의 멸종을 촉발한 소행성이 일으킨 초대형 지진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그는 GSA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소행성 충돌로 만들어진 약 100㎞의 ‘칙술루브’ 충돌구를 연구해왔는데 주로 소행성 충돌 뒤 형성된 백악기 말기와 고(古)제3기(K-Pg)의 경계층 가운데 겉으로 드러난 노두(露頭)가 대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베르무데스는 2014년 콜롬비아 고르고닐라섬에서 발견된 ‘텍타이트(tektite)’라는 작은 유리구슬과 조각으로 형성된 지층에 주목했다. 분석결과 이 지층은 지각의 바위 등이 소행성 충돌로 발생한 강한 열과 압력에 의해 녹아 대기로 솟구친 뒤 천천히 식으면서 천연 유리가 돼 다시 땅에 떨어지며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칙술루브에서 약 3000㎞ 떨어진 고르고닐라섬 해안에 노출된 바위는 약 2㎞ 심해 바닥의 상황을 증언해주는 것으로 제시됐다. 그리고 노두에는 소행성이 충돌할 때 이 바닥에 진흙과 모래, 작은 생물들이 쌓이고 있었으며 지진에 의한 진동으로 바닥에서 10∼15m 깊이의 이암(泥岩)과 사암(沙岩)층까지 연성 침전물 변형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발견됐다.

진동에 따른 단층과 변형은 소행성 충돌 이후 형성된 텍타이트층에서도 확인됐다. 심해에 미세한 텍타이트 입자가 쌓여 층이 형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지진파가 수주에서 수개월 간 이어졌음을 의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베르무데스는 "이 지진이 발산한 에너지가 10의 23승 줄(J)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이는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의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1 지진의 5만배에 달하는 에너지량"이라고 전했다. 수마트라섬 지진의 위력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266만개와 같다는 점에서 소행성 충돌로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이 가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텍타이트층 바로 위에서는 양치식물 포자가 발견돼 식물의 복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르무데스는 "고르고닐라섬의 연구 스폿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다 소행성 충돌 당시 깊은 대양 속에 있어서 쓰나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등 K-Pg 경계층 연구에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그는 멕시코의 엘 파라로테에서 강한 진동이 수분을 머금은 퇴적층을 물처럼 흐르게 하는 액화 현상의 증거를 확인했으며 미국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텍사스주 등지에서는 초대형 지진과의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층과 틈을 찾아내기도 했다.

한편 베르무데스에 앞서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은 이 소행성이 수마트라섬 지진이 일으킨 것의 3만배나 되는 초대형 쓰나미를 유발해 거의 모든 해안에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지구물리학회(AGU) 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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