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박인기

세상은 말하는 인간으로 가득하다. ‘말하는 인간만이 세상을 바꾼다고 확신하는 걸까. 마치 귀를 막고 말을 하는 듯하다. “나는 네 말 안 들을 거야. 오로지 내 말만 할 거야.” 세상이 이렇다면 듣는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듣는 인간은 정녕 무기력한 존재인가.

말하는 인간듣는 인간이 있기에 존재한다. 서로 호응을 이루어 세상의 소통이 질서를 얻는 것이다. 공개적 청문 자리에, 말하라고 불러 놓고서도, 아예 듣지 않겠다는 장면을 보는 일은 흔한 일이 되었다. 듣지 않고 내 말만 하겠다는 마음은 탐(, 욕심(, 화냄(,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마음, 딱 그 마음이다. 여기에 비하면 듣는 인간은 윤리적 인간이다.

듣는 인간이 먼저이다. ‘말하는 인간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그걸 듣는 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소통 행위의 숨은 회로를 모르는 데서 생긴 오해다. 인간의 뇌는 그냥 백지상태에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들은(보는) 바가 있어야 그걸 가지고 말을 한다. 인간의 언어 발달 과정도 듣기 활동(activity)이 먼저 발달하고, 이어서 말하기 활동이 발달한다. 그래서 교과서의 제목도 말하기·듣기가 아니라 듣기·말하기이다.

깊어가는 가을밤, 세상 미디어의 온갖 소리를 멀리하고, 고향 산간 마을에 왔다. 고요 적막 속 뒷마당 밤나무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 듣는다. 우주의 두드림이 내 귀에 닿는 듯하다. 그렇구나, 인간은 듣기를 먼저 자연에서 배우고, 말하기를 사람에게서 배우는구나.

내일 아침 일찍 저 밤을 주우러 뒤뜰에 나가야겠다. 내 자랄 적에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얘야, 생밤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귀로 먹는 거란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듣는 인간의 듣는 감수성을 옛사람들은 저렇게 아름답게 간수했구나. ‘듣는 인간은 내면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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