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도체 시장이 다운 사이클에 접어든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감산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내년 5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딜라이트’ 매장. /연합
세계 반도체 시장이 다운 사이클에 접어든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감산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내년 5세대 10나노급 D램 양산을 통해 위기를 정면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딜라이트’ 매장. /연합

올해 3분기 삼성전자가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 TSMC에 내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삼성전자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판매가 부진하면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함께 인텔, 마이크론, IBM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천문학적신규 투자 계획까지 더해져 국내 반도체 업계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10일 국내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 TSMC는 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TSMC의 잠정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48%가량 증가한 2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은 24~25조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지난 8일 미국 정부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슈퍼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강도 높은 대중(對中)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8월 시행된 ‘반도체와 과학법’과 함께 중국 반도체 기술의 성장을 억지하겠다는 취지다.

대중 수출통제 조치에는 18나노(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핀펫(FinFET) 기술 기반의 반도체 생산설비를 중국에 판매할 경우 미국 정부의 허가를 필수로 받아야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조치는 중국 반도체 업계를 겨냥한 것이지만 중국에 생산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도 불똥이 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으로 하는 D램·낸드 플래시 메모리의 생산설비를 중국에 반입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반도체와 과학법이 전격 시행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국내 반도체 업계로서는 부담이다. 지난 4일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은 뉴욕에 1000억 달러(142조8000억원) 규모의 D램 공장 신설 계획 발표했다. 지난 2분기까지 삼성전자와 1위 자리를 다투던 인텔은 오하이오주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라인·연구시설·교육센터 등 복합단지인 ‘메가 팹’ 조성 계획을 밝혔다. IBM은 10년에 걸쳐 뉴욕에 200억 달러(28조원) 규모의 양자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 같은 미국 반도체 업계의 통 큰 투자 계획은 지난 8월 시행된 반도체와 과학법이 지원사격하고 있다. 반도체와 과학법에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520억 달러(7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25%의 세액공제 혜택도 받게 된다. 더욱이 뉴욕에 공장 건설을 결정하면 뉴욕주 정부로부터 55억달러(7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 지원금도 받을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미국 반도체 업계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제품 양산이 시작되는 오는 2025년부터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을 누르고 미국의 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패권 전쟁이 점차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반도체 시장에 불어닥친 매서운 한파로 국내 반도체 업계에 경고등이 들어온 상황이지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의 감산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5세대 D램 생산공정 도입을 통해 현재 당면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메모리 분야의 경쟁 업체인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이 발표한 감산 계획과는 대조되는 모양새다.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컨트롤 타워’의 복귀도 삼성전자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 8월 이 부회장의 복권 이후 삼성전자는 2027년까지 1.4나노 공정의 시스템 반도체 양산을 선언했다. 또 2030년까지 데이터 저장장치인 셀을 1000단까지 쌓는 V낸드 개발 계획도 잇달아 내놓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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