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로 임명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제다의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간부들을 만나고 있다. 전날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총리임명이 포함된 내각인사 칙령을 발표했다. /AFP=연합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로 임명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제다의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간부들을 만나고 있다. 전날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무함마드 왕세자의 총리임명이 포함된 내각인사 칙령을 발표했다. /AFP=연합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감산 결정을 늦춰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묵살하고 예상 이상의 대규모 감산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 재검토에 나섰다. ‘안보 제공’ 미국과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관계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혈맹이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서로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이 선 모습이다. 지난 약 80년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그 주요 배경인 달러 중심 석유시장을 가능하게 했던 양국 관계였기에 주목된다.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가 ‘하루 200만 배럴 감산’을 결정하기 며칠 전 미 정부관리들이 사우디와 주요 산유국에 전화를 돌려 ‘감산 결정을 미뤄달라’ 긴급 요청을 전달했다. 그러나 ‘절대 안 된다’는 단호한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백악관 관리들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여러 번 통화하는가 하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사우디 재무장관과 대화하는 등 집중 노력을 펼쳤으나 허사였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75달러까지 하락할 경우, 자국 전략비축유를 채울 대규모 원유 구매까지 약속한 미국의 제안도 거부했다. ‘감산은 러시아 편들기’, 미국의 압박 작전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실세들이 오히려 분노를 표했다는 전언이다. 미국~사우디 관계가 유례없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일 CNN 인터뷰에서 OPEC+의 석유감산 결정을 언급하며 경고했다. "내가 무엇을 고려 중인지 얘기하지 않겠다", "따라 올 결과가 말해 줄 것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을 전했다. "미국과 사우디와 양자 관계가 재검토 돼야 한다고 여긴다." 미 의회는 사우디에 대한 1억 달러 상당의 무기 판매 중단, 미군 병력을 철수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위원 일부에선 카르텔의 면책특권 박탈, 이른바 ‘노펙(NOPEC)’ 법안 필요성도 언급된다.

7월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이 아무 효과를 못내 세계적 이목을 끌었다. 당시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관한 사우디 왕가와 바이든 대통령 개인 통신 내용을 공개해, 도리어 무함마드 왕세자의 분노를 키웠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예멘전쟁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비판적 시각과 이란 핵합의 복원 노력을 들어, 참모진에 속내를 밝히기도 한다. "바이든 정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지 않겠다."

8월 하루 50만 배럴 증산을 계획하던 사우디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후 증산을 하루 10만 배럴로 대폭 낮췄다. 무함마드 왕세자의 지시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아모스 호치스타인 미 국무부 에너지안보 특사는 사우디 에너지장관인 압둘라지즈 빈 살만 왕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으며, 격분한 압둘라지즈 왕자가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석유정책 구축’의 결심을 굳혔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사우디의 동맹들조차 대규모 감산이 경기침체를 촉발해 원유 수요가 줄어든다며 감산 추진에 반발했으나, OPEC+의 단합 유지를 위해 결국 사우디의 감산 주장에 동의했다고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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