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운명이 걸린 또 하나의 전쟁, 휴전 회담
대한민국 운명이 걸린 또 하나의 전쟁, 휴전 회담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20.0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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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특별기획 26

1951년 여름, 중국군은 대규모 공세를 펼칩니다. 이는 1950년 11월부터 12월까지의 제2차 공세 이래 가장 규모가 큰 작전으로 한반도에서 영원히 유엔군을 몰아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유엔군의 맹렬한 반격으로 작전은 성공하지 못하고 전선은 교착 상태에 들어갑니다.

유엔군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된 중공군과 북한군은 현 상태에서 휴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중공군과 북한군은 너무 빠른 속도로 대구 지역까지 진격해 내려 왔기 때문에 보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인명 피해도 중공군 46만, 북한군 56만이라는 엄청난 손실을 입어 빠른 시일 내에 전투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역시 중공군의 공세가 한창 진행 중이던 5월, 전쟁을 군사적 승리가 아닌 정치적 타협으로 종결한다는 방침을 세운 상태였습니다.

정치적으로‘ 명예로운 휴전’을 모색한다는 것입니다. 1951년 6월 23일 소련 대표 말리크의 휴전 회담 제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여기엔 미국의 소련 문제 전문가 캐난과 말리크의 물밑 작업이 있었습니다. 미국, 중공, 북한의 분위기가 휴전 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1951년 3월 24일에 한만 국경까지 진격하기 전에 정전은 안 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협상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목표는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뿐

국군 부대 창설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휴전 직전까지 이 대통령은 '단독으로라도 북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군 부대 창설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대통령. 휴전 직전까지 이 대통령은 '단독으로라도 북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목표는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세는 이승만 대통 령의 의도와는 달리 휴전으로 흘러갔고 마침내 리지웨이 유엔군 사령관은 6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중공군 총사령관에게 사실상 휴전 협정에 동의하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1951년 6월 23일 소련의 유엔 대표 말리크가 휴전을 제의한 이후에도 여전히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해주기를 바라던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6일, ‘유엔군의 대규모 공격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리지웨이 사령관의 의중을 파악하고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은 반쪽 나라에서는 우리 국민을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단된 조국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정해서 결국 파멸하고 말 것입니다. 분단선을 받아들이면 우리 민족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에 빠질 것입니다. 이점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분명한 사실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강한 반면) 공산주의 제국(帝國)은 그 내부의 결함으로 인해 썩어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협상을 진행한다 면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과 자유 선거라는 목표에 못 미치는 선에서 결말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반도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통일’이라고 믿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은 조국 분단에 동의하는 것은 자유의 상실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세의 흐름상 휴전 협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대통령은 협상 조건으로 몇 가지를 내세웁니다.

첫째, 중공군의 완전 철수. 둘째, 인민군 완전 무장 해제. 셋째, 유엔 감시 하에 소련과 중공의 북한에 대한 군사 원조 중지. 넷째, 어떤 문제 해결에도 한국이 간여할 것. 다섯 째,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는 침략 받지 않을 것.

그러나 전쟁 당사자이며 직접 피해자인 한국의 입장이 무시된 채 휴전 협상은 계속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기발하다 못해 엽기적인 방법을 구상하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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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The Other War: Ceasefire Talks

1951년 10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회담에서 유엔군 대표 제임스 머리 대령(오른쪽 가운데)과 북한 인민군의 장춘산 대좌(왼쪽)가 비무장지대의 남북 군사분계선이 그려진 지도들을 보면서 휴전선 경계를 논의하고 있다. 

In the summer of 1951, the massive Chinese army attacked again. It was their biggest assault since November and December of 1950, and they wanted to push the U.N. forces out of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the U.N. forces fought back fiercely, and the war went into a stalemate deadlock.

Realizing they could not win over the U.N. forces, the Chinese and the North Korean armies began to think about ceasefire as it was. The Chinese and the North Korean forces came down to Taegu too fast and the supply line was too long and too thin. They also suffered huge casualties, 460,000 Chinese and 560,000 North Koreans, respectively.

It was very difficult to keep going with such heavy losses. The U.S. under heavy attack by the Chinese through May 1951, began to think about ceasefire also. Political solution rather than military victory. They wanted to have an ‘honorable ceasefire’ political solution.

On June 23, 1951, Jacob A. Malik of Soviet Union suggested a ceasefire talk to the U.S. George Kennan, the U.S. expert on Soviet Union at the State Department and Jacob A. Malik talked behind the scene for the ceasefire meeting.

While the U.S., China and North Korea were leaning to ceasefire, President Syngman Rhee was resolutely against it. He issued a declaration long before the ceasefire talk that there would be no cease fire until South Korea advances to the Korean-Manchurian border. President Rhee was dead against the ceasefire itself, and so he could not accept negotiations of any kind with the enemy.

▲  1952. 미 군사고문단 교관이 국군 신병 교육장에서 M1 소총 사격술을 교육하고 있다.
▲ 1952. 미 군사고문단 교관이 국군 신병 교육장에서 M1 소총 사격술을 교육하고 있다.

He was determined to reunify the Korean peninsula under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owever, the U.S. was for the ceasefire and General Ridgway following the directive from the U.S. President Truman sent a message to the Chinese army commander on June 30th agreeing to a ceasefire talk.

Even after Jacob Malik of the Soviet Union suggested ceasefire to the U.S., President Rhee was hoping the U.N. forces would advance to the Yalu River. He realized there would be no more massive attack by the U.N. forces anymore, and he wrote a letter to General Ridgway on July 16th.

“This government basically does not believe we can protect our people with the nation divided in half. This divided country shall eventually cease to exist from the unstable economy, politics, and the military weakness. If we accept the ceasefire line, our people will be in irrecoverable curse. This is very obvious to all Koreans. Democratic country is strong. Imperialistic communist countries are corrupt from within and are weak. We cannot fail if we persevere with this conviction. We should not hasten ceasefire until we achieve unification through free election.

President Rhee believed that the only solution to the Korean problem was ‘unification.’ He believed that agreeing to the division by ceasefire meant giving up the freedom itself. However, he also knew that the ceasefire talk was the direction the U.S. chose and it was irreversible.

He demanded several conditions to the ceasefire talk. First, complete withdrawal of the Chinese forces from the peninsula. Second, complete disarmament of the North Korean armed forces. Third, no more military aid to N. Korea from the Soviet Union and the Communist China, to be monitored and supervised by the U.N.

Fourth, South Korea will be a party at the negotiation and in everything. Fifth, no concessions on the sovereignty and territorial rights of the Republic of Korea. However, the ceasefire talk moved forward without S. Korean representation. President Rhee came up with a never-heard-of surprise measure.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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