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
김정식

지난 15일 미국 LA에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국내 항공사 소속 승무원 A씨가 중태에 빠졌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괴한이 한 아이의 등에 흉기를 찌르고, 이어서 A씨의 가슴을 찌른 후 도주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며칠 후 긴급 수송을 도왔던 USC의 외상 전문 간호사의 증언과 함께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간호사에 따르면 A씨는 괴한이 한 아이를 죽이겠다며 뒤쫓아오자 아이를 보호하며 감싸 안았다고 한다. 결국 A씨는 오른쪽 등과 옆구리, 가슴 위쪽 등 다섯 군데 이상을 찔렸고, 이때 폐에 치명상을 입었다. 간호사는 "A씨가 병원에 이송될 당시에도 본인은 괜찮으니 다친 다른 사람들을 먼저 구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12년 근무하며 이렇게 침착하게 행동하는 환자는 처음 본다"라는 말을 전했다. 다행히 A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현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 중이라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져야겠지만, 지금까지의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필자는 그녀를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태원 사고 당일, 거구의 남성들을 ‘무 뽑듯’ 구조한 것으로 알려진 숨은 영웅들은 자밀 테일러, 제롬 오거스타, 데인 비사드라는 이름의 주한 미군이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가운데 경찰과 구조대원이 없었던 골목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같은 장소에서 "사람이 죽고 있다. 통제에 따라달라" 울부짖으며 현장을 통제하던 용산경찰서 이태원 파출소 소속 김백겸 경사 역시 마찬가지다. 할리우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괴력을 갖지는 못했어도,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감당해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반면 자신 혹은 특정 진영을 ‘영웅화’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가득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반정부 정서를 기조로 한국 경제 위기론을 온라인에 유포하다가 수감된 ‘미네르바 사건’의 주인공인 박대성 씨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20대가 면회를 신청했다. 그는 다짜고자 ‘당신이 여기서 자살하면 이명박 정권 붕괴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며 자살을 종용했다"라는 그의 폭로는 가히 충격이었다. 대한민국에는 꽤 오래전부터 현재까지, 진영에 유리한 영웅서사를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많은 국민에게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된 듯한 조국은 어떠한가.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극렬 지지자들에 더해,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스스로 핍박받는 순교자로 포장하는 것 같아 불편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가 관악구에서 총선에 임하며 영웅으로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라는 예측도 나온다.

안타깝게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은 광장과 온라인에서 추모가 아닌 특정 진영의 이익을 위해 호명 당한다. 그리고 정작 어려운 상황에서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헌신한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잊으며 ‘영웅이 없는 사회’라 한탄하곤 한다. 부재한 영웅을 대체한다며 온갖 ‘잡놈’들은 티를 못 내 안달이다.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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