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올해 우리나라와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역대 최소 수준으로 좁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일본에 대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진 우리 국민으로서는 눈에 띄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만3591달러다. 일본은 3만4357달러로 양국의 격차는 766달러에 불과하다.

지난 1995년만 해도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1만2570달러인 반면 일본은 무려 3만1640달러나 많은 4만421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30년도 안 돼 역전을 목전에 두게 됐다.

일본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1인당 GDP가 구매력 기준으로 주요 7개국(G7)은 물론 한국에도 뒤지는 점을 뼈아프게 짚었다. 노구치 유키오(野口悠紀雄)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일본인들이 가난해졌고, 산업은 약해졌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들뜰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대만에 20년 만의 역전을 허용할 처지다. 대만은 사상 처음으로 일본까지 앞설 태세다.

IMF가 예측한 올해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5513달러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의 3만3140달러보다 7.2% 늘었다. 일본이 걷고, 한국이 뛰었다면, 대만은 날았다. 동력은 반도체산업이다.

반도체는 21세기 산업의 쌀이다. 세계 주요국이 총성 없는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안팎에 달한다. 반도체의 수출 실적에 따라 무역수지가 좌우될 정도다.

그동안 글로벌 반도체시장은 삼성전자와 인텔이 주도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인텔을 누르고 글로벌 1위 자리를 꿰찼지만 올해는 대만의 TSMC에 왕좌를 내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무엇보다 영위하는 사업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이지만 메모리반도체 중심의 매출이 많다. 업황에 따라 재고 축적, 가격 하락 등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반면 반도체 위탁생산, 즉 파운드리 시장에서 5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TSMC는 고객사의 주문을 받아 제품을 생산해 재고·가격·매출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애플과 퀄컴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이 TSMC의 고객사다.

세계 3위의 파운드리 업체 UMC 역시 대만 기업이다. 그럼에도 ‘언제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반도체기업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반도체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무소속의 양향자 의원은 세액공제율을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중소기업 30%로 하는 일명 ‘K칩스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며 반대해 4개월째 표류중이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반도체 수출전선의 선봉장임에도 ‘부자감세’ 프레임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반기업 정서를 등에 업은 지독한 언더도그마 아니면 정파적 프로파간다다.

국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자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10%로 반토막 낸 자체 법안을 내놓았다. 국가의 미래조차 땅에 묻는 자기 파괴적 입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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