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터키 은행규제감독청(BRSA)은 지난달 27일 전직 중앙은행 총재, 경제학자, 언론인 26명을 은행법 및 환율조작 혐의로 형사고발했다. 이들이 소셜미디어나 언론 매체를 통해 은행의 신뢰도와 평판을 떨어뜨리는 발언을 하고, 이를 통해 환율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올해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는 와중에 발생한 일로 일종의 비판 목소리 잠재우기다.

터키는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때 홀로 ‘거꾸로의 행보’를 거듭해 왔다. 지난해 9월 이후 터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넉 달째 이어지며 19%인 기준금리는 5%포인트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오르고, 외국환 대비 자국 화폐가치가 하락한다. 지난해 초만 해도 달러당 7.4리라에 거래됐던 리라화는 지난달 16일 기준금리 인하 직후 15.7리라까지 떨어졌다. 1년 새 화폐가치가 반토막난 것으로 사상 최저치다. 화폐가치는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반영한다. 그만큼 터키 경제가 위기에 몰렸다는 방증이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때문에 벼락거지가 생겼다면 터키에서는 인플레이션 때문에 벼락거지가 속출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피하려면 은행에서 돈을 빼내 안전한 자산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달러화인 것이다. 터키 중앙은행이 다급하게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터키의 통계기관인 투르크스탯이 지난달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1.3%다. 터키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어선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달 18일에는 주가 급락으로 한 시간에 두 차례나 서킷브레이크(거래중단)가 발동됐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덮친 것이다. 화폐가치 폭락과 물가 급등, 그리고 주가 폭락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시중에 돈이 풀리며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은 경제의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리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를 거부한 중앙은행 총재를 3명이나 갈아치웠다. 또한 물가 급등으로 민심이 동요하자 올해 최저임금을 50%나 올리는 처방도 내놓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인 셈이다.

연초 300bp(1bp=0.01%p)이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600bp를 훌쩍 넘어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CDS는 부도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평가하는 터키의 디폴트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터키 국민들은 지금 주식인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에르도안 정권은 벌금을 앞세워 원가 이하로 빵을 팔라며 생산업자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빵 생산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고, 국민은 더 긴 줄을 서야 한다.

최근 터키가 처한 곤경은 집권 연장을 위해 정치가 경제에 개입한 산물이다.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얼마나 파괴적인 경제 재앙을 가져오는지 절감하게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서울대 강연에서 "경제는 과학이 아닌 정치"라고 강변했다. 기본소득, 국토보유세 등 자신의 포퓰리즘 공약을 강행하기 위한 ‘밑자락 깔기’일 것이다. 권력을 무기로 경제를 뜻대로 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에르도안 대통령과 닮아 보인다. 데칼코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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