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남자는 세 번만 운다는 말이 있다. 이젠 빛바랜 표현이 됐지만 함의(含意)는 있다. 남자의 울음은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판단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세 번만 운다는 말 역시 학습된 남성성의 산물이라며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이 요즘 분위기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라는 공공화장실 문구도 수정해야 할 판이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눈물이 나올 만한 상황에서 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눈물이 때로 인간적이며 솔직하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눈물 마케팅이다. 특히 대중의 표(票)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에게는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흘린 눈물이 대표적이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불과 50만 표 차이로 이겼는데, 눈물로 큰 재미를 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V 광고에서 가요 ‘상록수’를 부르며 기타를 치는 모습은 대선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노동자의 손을 잡고, 농민에겐 막걸리를 따라주는 모습과 함께 나온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멘트는 유권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정감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돌파한 것이다. 이 같은 눈물 마케팅은 ‘노풍’을 불러일으키며 그를 청와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크든 작든 위기에서 벗어나는 마법 지팡이가 될 수 있다. 어떤 정치적 행보도 국민의 심정적 지원을 얻으면 뒷배가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인위와 가공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흘린 눈물이 그런 류(類)다.

그는 유세를 위해 논산의 전통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토란을 파는 한 노인에게 현금을 건넨 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생각도 나고, 90이 넘은 어른이 생업에 도움이 되겠다고 쭈그리고 계신 것이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맥락 없이 ‘내 탓’이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라고 해서 눈물이 없을 수 없다. 1964년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루르 탄광지대의 함본 광산을 찾아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위로했다. 그는 준비한 연설 원고를 옆으로 밀쳐놓고는 "비록 우리 생전에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에게는 잘 사는 나라를 물려주자"며 울었다.

서독 총리 주최 만찬 자리에서도 울먹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국민 절반이 굶고 있다. 우리도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고 싶지만 돈이 없다. 빌린 돈은 반드시 갚는다’는 것이 요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에게 빼앗겼던 가장 큰 도시 헤르손을 되찾은 후 병사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에 눈물을 흘렸다. 이들의 눈물은 가난과 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처절함에서 나온 것이다.

동정심 많은 우리나라 정서상 눈물을 흘려 손해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지금도 눈물 마케팅이 횡행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에 눈물을 강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불법·떼법 시위에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는 정부와 엇박자를 내며 ‘휴전’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감성팔이다.

국가를 운영해 나갈 역량이나 결단력 없이 얕은 감성에 영합해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다. 기회주의적 리더십이며, 분칠된 눈물일 뿐이다. 제가 죽인 먹이를 먹으며 불쌍한 듯 눈물을 흘리는 나일강 악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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