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 톱5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자동차 라인업 확대와 사업 전 영역의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빅3 진입의 기틀을 다질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미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 톱5에 올랐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기자동차 라인업 확대와 사업 전 영역의 전동화 전환을 가속화함으로써 빅3 진입의 기틀을 다질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미래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

지난해 미국 자동차 시장은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격언이 입증된 한 해였다. 89년간 권좌를 지켜온 제너럴모터스(GM)가 자신의 안방에서 일본 토요타에게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줬고, 현대자동차그룹은 혼다를 제치며 톱5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라는 초유의 위기가 대격변의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를 기회 삼아 올해 차량용 반도체 수급 안정화와 친환경 차량 중심의 전동화 전환을 더욱 가속화함으로써 ‘빅3’를 향한 대약진에 나설 계획이다.

6일 완성차 업계와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토요타가 GM을 누르고 판매량 1위에 올랐다. GM이 221만8000대 판매에 머문 반면 토요타는 233만2000대를 팔아 11만4000대의 우위를 점했다. GM이 왕좌를 뺏긴 것은 1931년 이래 89년 만이며, 토요타는 미국 자동차 시장 정상에 오른 최초의 외국 자동차 기업이 됐다.

현대자동차그룹도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다 판매라는 기염을 토하면서 35년만에 처음으로 일본 혼다를 넘어 톱5에 입성했다. 현대자동차가 전년 대비 23.3% 늘어난 78만7702대, 기아는 19.7% 증가한 70만1416대를 팔았다. 혼다도 146만6630대로 선전했지만 현대자동차·기아 연합에 뒷덜미를 잡혔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메이저 완성차 메이커들의 각축장인 미국에서의 리더십은 기술력과 상용성, 경쟁력을 인정받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이번 순위 변동이 주는 의미는 절대 가볍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재편과도 맞닿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각변동이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GM만 해도 차량용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수차례 멈춰야 했고, 빅3 가운데 유일하게 판매량 하락(-12.9%)이라는 성적표를 받으며 2위로 내려앉았다. 이와 달리 토요타와 현대자동차그룹은 생산일정 조정, 재고 활용 등으로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잘 대처해 공급 차질을 최소화하면서 각각 10.4%, 21.6%의 판매 증진을 이뤄냈다.

여기에 전기자동차·하이브리드카·수소자동차 등 미국 친환경차 시장의 성장 역시 큰 변인으로 꼽힌다. 실제 지난해 3분기 미국 신차 판매가 13.4% 감소하는 동안 친환경차는 63.1% 확대되며 큰 대조를 보였다. 아직 업체별 판매량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톱6 중 가장 높은 20%대의 판매 성장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전년 대비 30%를 웃도는 친환경차 수출 호조가 뒷받침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대란과 친환경 트렌드가 수세대 동안 다져진 철옹성에 균열을 일으킨 셈"이라며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추격자에게 이는 다시 만나지 못할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한껏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지난 3일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글로벌 판매 목표를 각각 432만3000대, 315만대로 설정했다. 지난해 666만8037대보다 12.1% 상향된 수치다. 목표 달성의 방점은 전동화 가속을 통한 친환경차 시장 리더십 확보에 찍혔다. 이를 위해 올해만 아이오닉6, 제네시스 GV70, 니로 EV, EV6 고성능 모델 등의 전동화 신모델 출시가 예정돼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같은 날 "올해 친환경 톱티어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반을 확실히 다질 것"이라며 "모터·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와 함께 연구개발-생산-판매-고객관리의 전 영역에서 전동화를 적극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물론 전동화 전환이 현대자동차그룹만의 어젠다는 아니다. 모든 자동차 기업들이 올해 사업의 초점을 전동화에 맞추고 있다. 5일(현지시간)에만 GM이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에 맞서 ‘실버라도’ 픽업트럭의 전동화 버전을 공개했고, 스텔란티스는 2028년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전 모델을 전기자동차로 출시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최근 미국이 2030년 기준 전기자동차 판매 비중을 기존 30%에서 50%로 상향 조정함에 따라 올해 전기자동차 패권 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 미국 시장 톱5 굳히기에 성공한다면 앞으로 빅3 진입이라는 더 큰 목표를 노릴 수 있다"며 "지난해 3위 포드, 4위 스텔란티스와의 격차가 각각 40만대, 29만5000대 수준인 만큼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지난해보다 12.1% 증가한 747만3000대의 판매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고속성장하고 있는 친환경자동차 시장 공략에 더욱 적극 나설 방침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전기차.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은 올해 지난해보다 12.1% 증가한 747만3000대의 판매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고속성장하고 있는 친환경자동차 시장 공략에 더욱 적극 나설 방침이다.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 전기차.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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