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갤러리 '한국 추상화가 7인'전...한국적 양식 고민 묻은 57점 전시

서울 삼청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에이도스(eidos)를 찾아서:한국 추상화가 7인’전이 개막했다(1월 7일~2월 6일). 이봉상(1916~1970)·류경채(1920~1995)·강용운(1921~2006)·이상욱(1923~1988)·천병근(1928~1987)·하인두(1930~1989)·이남규(1931~1993)의 작품 57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20세기 한국 추상화를 이끌었으나 사후 빠르게 잊혀지고 있는 작가들이다. 광주시립미술관·대전시립미술관 소장품 등을 포함해 전체 작품 중 30%가량이 ‘비매’다.

이봉상, 나무 I(1963) , 캔버스 유채, 115x168cm. /학고재

한국 추상미술의 한 경향, 색감을 위주로 한 ‘단색화’가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게 한국미술의 전부는 아니다", "전후 서구에서 유입된 추상회화를 받아들이되 한국적 양식을 고민한 작가들이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만의 ‘그것’이 뭔지 함께 살피고 싶었다."총괄 기획 김복기 경기대 교수의 설명이다. 전시 제목의 ‘에이도스(eidos)’란 그리스어로 보편 형상(이데아) 및 그것의 ‘본질’을 말한다.
 

이봉상, 미분화시대 이후 2(1968), 캔버스에 유채, 193x119.4cm. /학고재

이봉상은 14살 때 제8회 조선 미술전람회에 입선해 일찍 주목받았다. 1937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 교수를 역임했다. 후기엔 미시 세계로 파고들며 형태의 본질을 찾아 들어가는 변화가 뚜렷해진다. 1970년 작고한 그해 신세계 화랑 회고전을 끝으로 세상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다.

류경채, 화사한 계절(1976), 캔버스 유채, 162x130cm. /학고재

류경채는 이화여대·서울대 교수·예술원 회장을 지냈다.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도 열었으나, 역시 잊힐 위기에 처해 있다. 60년대 풍부한 색채와 역동적인 붓질로 서정적 추상을, 70년대 모노톤으로 계절이나 날씨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냈다. "전시장에서 처음 ‘화사한 계절’ 포장을 풀었을 때 모두 감탄했다." 학고재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상욱, 점(1973), 캔버스 유채, 90.5x72.5cm. /학고재

이상욱은 작고 후 국립현대미술관(1992)·일민미술관(1997)에서 회고전이 열렸는데, 벌써 20~30년 전 일이다. 1942년 도쿄 가와바타화숙(畵塾)에서 수학한 그는 원형·사각형, 단순화된 띠·점으로 구성한 추상과 토막 난 붓자욱에 의한 추상화 등을 발표했다. 80년대 이래 붓글씨체처럼 붓의 속도감 리듬감이 더해졌다. 한편, 이남규의 예술 작업은 구도(求道)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공주사범대 국문과·서울대 회화과를 졸업, 1968년 오스트리아 유학을 떠나 유리화를 공부했다. 생명·자연·우주 등의 근원적 질서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에게 절실한 요소가 ‘빛’이었다. 김 교수 말대로, "이남규 회화는 그저 순하고 약한 그림 같지만 볼수록 따뜻한 빛이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남규 회고전은 1993년 작고 이후 가나아트센터(2003)·대전시립미술관(2013)에서 있었다. 이밖에 호남 추상미술의 개척자 강용운, 1950년대 후반 대담하게 초현실주의 그림을 그렸던 천병근, 한국 전통미술과 불교적 세계관을 추상회화로 구현한 하인두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이남규, 작품(1969), 캔버스 유채, 59x43cm. /학고재
이남규, 작품(1975), 캔버스 유채, 130x90cm,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학고재
강용운, 예술가(1957),목판 유채, 33.3x24.2cm. /학고재
천병근, 운명(1959), 캔버스 유채,106x106cm. /학고재
하인두, 승화(1984), 캔버스 유채, 162x130.3cm. /학고재

김복기 교수는 이번 전시에 대해, "단색화로 촉발된 한국미술의 관심을 계속 이끌어가기 위해서" 라고 의미 부여 했다. 아울러 "서구 미술의 계보만으로 온전히 설명 안 되는 게 한국의 추상회화", "추상의 형식에 내용·정신까지 함께 들춰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세대의 추상화에서 ‘서정성’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 작품이 더 많이 전시·거래·연구돼야 우리 미술의 정체성도 다져리라 본다." 김 교수는 그 부분을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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