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1등 신문이 없어졌다. 조선일보가 ‘자칭 1등 신문’을 오래 유지해왔다. ‘자칭 1등’은 분명했고 사실상 ‘타칭 1등’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니다. 조선일보는 2등 신문이 분명해졌다.

언론은 해당 역사적 시기의 정확한 가치 지향성을 상실해 버리면 추락한다. 순식간이다. 지금 조선일보가 딱 그렇다. 3·1절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몇 개의 집회를 보도한 1일자 조선닷컴의 ‘서울 도심 곳곳서 3·1절 대규모 집회…오후 내내 혼잡’ 기사, 2일자 조선일보 8면 ‘보수단체 집회로 광화문 소음 몸살’ 기사를 보면 전형적인 2류다. 조선일보는 최근 수년 동안 대규모 집회를 보도할 때마다 ‘보수단체 집회로 교통체증’ ‘온종일 길 막혀 시민 짜증’ 식이다.

‘교통체증’은 집회 중 생긴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어떤 보수단체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 시기에, 이같은 대규모 집회를 계속 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은 일체 없다. 집회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내용 없고 그저 기자의 망막에 비친 ‘단세포 현상’만 기록한다. 기자들에게 보수-혁신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기초지식을 요구할 생각은 애초에 없다. 하지만 ‘보수’가 뭔지, 현 시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정도는 공부하고 기사를 써야 할 것 아닌가.

70,80년대 한국사회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을 때 조선일보는 동아일보에 눌려 있었다. 90년대부터 조선일보는 시대정신을 정확히 포착했다. ‘이승만 재평가’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등의 캠페인은 해당 시기를 꿰뚫는 혜안이었다. 현 시대는 세계적 판도에서 ‘자유민주주의 대 전체주의 독재’ 구도다. 한반도 전체의 프레임도 ‘자유 대 독재’다. 1등 언론이라면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의 세계화’ ‘세계의 자유민주화’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이것이 현 시대의 가치다.

조선일보가 꼭지점에서 꺾인 결정적 사건은 2016년 ‘박근혜 탄핵’이다. 탄핵 사건은 3가지 관점을 다 봐야 한다. 법치의 변, 정치의 면, 그리고 5000년 대한민국 공동체가 갖는 관습의 면을 봐야 한다. 관습의 면은 일반인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역사인식에 깊은 내공이 필요하다. 결국 1등 조선일보는 김무성·박지원 등 2류들과 타협했다. 조선일보의 하산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래도 이 추세는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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