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의 반도체법과 관련해 국제 여론이 들끓는다. 삼성을 비롯해 대만 TSMC, 유럽 기업들도 불만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미 반도체법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됐다"고 사설에 썼다. 미국이 내거는 조건들이 자꾸 주렁주렁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미 반도체법은 ‘미국 영토 안에 외국 기업이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간이다. 보조금은 총규모 390억 달러(약 51조 원)다.

그런데 미 정부가 내건 조건들이 간단치 않다. 첫째, 미국 정부가 요구하면 반도체 시설에 접근을 허용하라는 것. 핵심공정을 공개하라는 뜻이다. 삼성과 TSMC는 당연히 기술 유출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예상 이익을 초과할 경우 미국과 이익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초과이익 환수제다. 미 상무부에 재무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금지된다. 미국에 지은 공장에서, 미국인 세금으로 돈을 벌었으니, 미국과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일종의 기업속지(屬地)주의 발상이다. 글로벌 시대 기업인들이 받아들이긴 어렵다. 무엇보다 경영권 침해다. 기업은 초과 이익으로 시설 투자금을 조기에 환수하는 것을 중요한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이것이 원천제약을 받게 된다. 직원들도 자신이 열심히 일해 받는 성과급을 미국 정부에 법인세로 내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향후 10년간 중국에 투자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다. 신규 투자는 물론이고 기존 시설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규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30조 원 이상을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 절반 정도를 중국에 의존해왔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공장들을 폐쇄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세금으로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중국과 첨단기술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20% 이상이다. 개별 기업 문제가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봐야 한다. 민주당도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16일 세액공제를 높이는 반도체특별법을 처리하기로 했다. 정부는 미 반도체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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